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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강원도 여행( 양 양 낙산사) 3..

by 북한산78s 201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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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여행 설악산을 뒤로하고 7번국도를 타고서

하조대로 내려오다가 낙산사 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아직은 저녁시간으로는 이른시간인지라 한번 들려보기로한다.

동해안의 푸르고 깊은바다를 가까이서 내려다볼수가

있는 위치에 있는곳이 낙산사 이다.

낙산사 로 집입하는길은 두군데인데 우리는 홍예문을 뒤로

하고 후문 매표소로 들어선다.

 

홍에문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면은 낭만적으로 낙산사를

들어설수가 있는길이고 후문은 그냥 좁은 주차장에다

차를 주차하고 바로 매표소로 들어설수가 있다는것이다.

 

그러나 낙산사의 낭만을 느끼고 싶다면은 정문 홍예문

주차장에 차를 주차 해놓고 좀걸어서 낙산사의 낭만을

느끼여 보는것도 아주좋은 추억거리가 될듯 하다.

 

 

 

 

 

 

 

 

 

 

 

의상대는

의상(義湘)스님이

(부산 범어사를 건립한 신라의 승려)

(625~702) 625년(진평왕 47) 경상북도 경주에서 한신(韓信)의 아들로 태어남.)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의 좌선 수행처라고 전한다.

     

근대에 들어와 1925년에

낙산사 주지 김 만옹스님이 이곳에 정자를 새로 지었으며, 만해 한 용운스님이 의상대기를 지었다.

정자를 지을 당시가 6월인데, 들보로 쓸 굵은 나무를 찾고있었다.

 

그러던 참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대 위에 있던 소나무 한 구루가 넘어졌고,

스님은 그 소나무를 들보로 만들어 육각형의 정자를 완성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곳을 의상대로 불러 왔으나 이때 정식으로 의상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1936년 폭풍으로 무너져 있다가 이듬해 중건되었으며,

1974년에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48호로 지정되었고 1975년에도 한차례 중건되었다

    

의상대는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 위에 있는데,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즐겨 찾는 곳이였으며,

지금도 낙산사를 찾으면 반드시 들러 보는 곳이 되었다. 

 

 

 

 

 

 

 

 

 

 

 

 

 

 

 

 

 

 

 

 

보타전은 

낙산사 경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불전으로 설악산 신흥사 조실 무산 오현스님의 원력과

당시 주지를 지낸 지홍, 보산, 마근스님에 의해

1991년 7월에 불사를 시작하여 1993년 4월 10일에 완공하였다.

 

 

 

 

 

 

 

 

 

 

 

 

 

낙산사의 해수관음상(海水觀音)은

1972년 착공하여 5년 만인 1977년 11월 6일 점안했다.

 

크기는 높이 16m, 둘레 3.3m, 최대너비 6m이며,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 양 옆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관음상은 대좌위의 활짝 핀 연꽃 위에 서있는데,

왼손에는 감수로병을 받쳐들고 오른손은 가슴께에서 수인을 짓고있다.

 

 

 

 

 

 

 

낙산사에는 해당화가 어찌나많은지 모르겠다.

인천 소래습지공원에도 해당화가 있긴해도 낙산사같이

열매가 충실하게 맺어진것 같지않은데 말이다.

 

 

이길은 걸으면은 당신의꿈이 이루워진다고 한다.

모든것이 허망스런 일인듯하지만은 한번 낙산사를

방문하면은 내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걸어보기바란다.

 

 

 

 

 

 

 

 

낙산사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이 창건하였다

. 858년(헌안왕 2) 범일()이 중건()한 이후 몇 차례 다시 세웠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전쟁으로 소실된 건물들은 1953년에 다시 지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 경내에는 조선 세조()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및 홍예문()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2005년 4월 6일에 일어난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은 소실되었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한 후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양양·낙산사 산불은 2005년에 강원동 양양군에서 발생했다.

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되면서 중요한 문화재들이 불에 타, 쓰라린 교훈을 준 산불이다

 

. 산불은 2005년 4월 4일 오후 11시 50분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발생했다.

 5일에는 낙산사가 소실되었고, 6일 새벽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산불이 설악산 입구까지 확산되자

 경찰 2천 여 명을 동원하고 물대포를 투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쉽게 진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며칠 전 발생했던 비무장지대 산불이 남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하고

있는 중에 발생하는 바람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었던 점이 있었다.

 

또한 강풍(순간 최대풍속 32m/s)인 양강지풍이 불었다는 점과 주로 소나무 산림이어서 인화성이 강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당시 동해안 지역으로는 건조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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