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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강원도 여행( 설악산 신흥사) 2..

by 북한산78s 201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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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2일  설악산 신흥사 ..

 

강원도 여행 (설악산 을 간다고 하면은 흔히들 가볍게 들려보는곳 이 권금성 을 케이블카 로

올라갔다오는것 과 설악산입구에 있는 고찰 신흥사 를 가볍게 들려보고 오는것이다.

 

일단 권금성을 케이블카로 올라갔다 왔으니 금강굴이나 비선대는 날씨가 너무더워서

힘들어들 안간다고들 하니 어쩔수없이 가까운 신흥사만을 들려보기로 한다..

 

신흥사 일주문은 한낮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시원한 나무그늘이라서 그리 뜨거운느낌이

들지가 않는다.

 

그러나 일주문을 통과하여서 통일대불 청도좌상을 볼려면은 뜨거운 땡볕을 피할수는 없는

것 같다..

 

 

 

 

 

 

 

 

신흥사 통일염원 석불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9,900㎡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높이 14.6m, 좌대 높이 4.3m, 좌대 지름 13m, 광배 높이 17.5m 규모의 대형 석가모니불로 민족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다.

 

총 108t의 청동이 사용되었으며, 8면 좌대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16나한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불상의 미간에는 지름 10㎝ 크기의 인조 큐빅 1개와 8㎝짜리 8개로 이루어진 백호가 박혀 있어 화려함을 더한다.

불상 뒤쪽에 있는 입구를 통해 불상 내부로 들어가면 내법원당이라고 불리는 법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1,000개의 손과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조성은 1987년 8월 30일 시작하였으며 10년이 지난 1997년 10월 25일 점안식을 가졌다.

불상 내부에는 점안식 때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도 봉안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난봄과 초여름에 가뭄이 심하였기에 설악산 계곡의 수량은 그저 미미하기만 하다.

계곡의 물도 충분한 수량이 흘러야하는데 너무 가뭄이 심하여서 깊은 계곡의 느낌이

들지않는것 같다.

요즈음은 대형 사찰에서는 템플 스태이 라고 절을 다니지않는 일반인들도 며칠동안

사찰음식을 들면서 고행을 하는곳이 여러군데생겨서  운영하는것 같다.

설악산 신흥사는 설악산 소공원 매표소에서 얼마되지않는 거리에 있어서 가볍게 다녀올수가

있는 고찰 이다.

설악산 신흥사는 신라시대(서기 652년 진덕여왕6년 )에 자장 율사가 창건 하였다고 전해진다.

 

 

 

신흥사 경내에서 만난 배롱나무

여름에 피는 꽃으로 드믈게 절을 찿는이들의 시선을 끌게 하는것 같다.

우리아파트에도 배롱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봄이 다지나도록 나무가

죽은듯이 있다가 아주늦게 나무순도 나오는것 같다.

 

 

 

 

 

 

 

 

 

 

 

 

 

 

 

 

 

 

 

 

 

 

 

 

 

 

 

 

 

 

 

 

 

설악산 신흥사의 긴돌담길을 걸어올라가면은  유명한 흔들바위와 울산바위까지

갈수가 있다.

시간이 허락이 된다면은 흔들바위를 가서 힘껏 밀어서 동해바다로 굴러떨어뜨려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긴 철게단을 올라가면은 울산바위로 올라서면은 푸른 동해바다를 조망하고

싶은데 여견이 되지를 않아서 아쉽기만 하다.

 

 

 

 

신흥사에서는 울산바위와 비선대와 대청봉을 올라가는 갈림길있어서

산행을 하는분들이 꼭들려보는 곳이다.

 

 

 

 

 

 

 

 

 

 

 

 

 

 

 

 

 

 

 

 

雪嶽山 新興寺 由來

이 가람은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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