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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동유럽 6개국

동유럽 여행,( 터키 이스탄블 돌마바흐체 궁전). 20.

by 북한산78s 201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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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찬 정원. 돌마바흐체 궁전.  http://blog.chosun.com/sa78pong   조선닷컴.

가득 찬정원이란뜻은 돌마바흐체 궁전은 해변을 흙으로 메우고 세운곳이라고 한다.

 

50만 금화.즉 현재 돈으로 5억불이 넘는 기금으로 건립된 이궁은 1856년 완공되었는데

궁의 내부 장식과 방들을 꾸미기 위해서 총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3층의 대칭구조로 지어진 궁의 내부에는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280개의 화병 156개의

다양한 시계 4톤과 2톤의 중량의 상들리에를 비롯하여 58개의 크리스탈 촛대. 560점 이상

의 그림. 손으로 몇년을 걸려서 직접 짠 대형 카페트등이 전시 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급격히 악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이를 만회하고자 서구화를 추진하고

국력을 쇄신을 하고저 압두메짓 1세가 프랑스베르사이유궁전을 모방해서 초호화판으로

이왕궁을 건립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막대한 건축비 지출이 어려웠던 왕실 재정을 더욱 악화 시키여서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궁전안에 들어가면은 큰 홀에 시계가 있는데 9시5분에 멎어 있다고 한것을 아시나요?

이분이 얼마나 유명한분이기에  우리나라로 말하자면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 하시면

됩니다.

 

터키의 개혁가이자 초대 대통령인(무스타파케말.아타투르크) 가 세브르조약에 대한 민족독립

전쟁을 일으켜 그리스군을 격퇴 시키고 정치 개혁으로 술탄제도를 폐지 하고  연합군과 로잔

조약을 체결하여 공화국제를 선포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며 정당정치를 활립한 터키의 건국의

영웅이라고 합니다.

 

돌마바흐제 궁전은 관광객의 입장은 허용되고 있읍니다.

그러나 궁안에서는 절대 카메라로 사진 촬영이 금지되여 있습니다.

그래서 궁전은 실내는 사진 한장 담지못하고 궁전의 외관만은 담을수밖에

없었습니다.

 

 

 

 

 

 

 

터키이야기.

터키 라는 국가를 말하자면은 흔이들 중세기 오스만 제국. 이스탄블.지중해의 나라.형제의

나라 등으로 알고 있다.

 

지난 6.25 전쟁때에는 미국.영국. 캐나다 에 이어서 네번째로 많은 군인들을 파견한 나라이다.

6.25전쟁때 에 동방의 먼나라에 15000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한 터키군은 종교가 이슬람교가

대부분인 지원병이였다고 한다.

 

그중 3500명이 아깝게도 희생되었을정도로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이다.

왜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 하였고 왜 고귀한 생명이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터키에 관공서에 가면은 호텔의 국기게양대에 터키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계양되어 있는 모습

을 볼수가 있다.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인들에게 굉장히 우호적이고 그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 코리아 라고

부른다고 한다.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하였던 돌궐 이라는나라가 있었다.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그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적도 없다고 한다지만은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인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 라고 불렀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 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시대의 마차 경기장 .히포드럼.

본래 이곳은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에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데 4세기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 누스에 의해 검투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이끄는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0만명 정도가 수용가능햇다고 하는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뿐만 아니라 왕위 계승

을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햇다.

 

13세기초에 십자군의 칩입으로 이광장에서 비잔티군과 치열한접전이 벌어졌는데 대부분

광장내 유적이 이때 파괴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곳은 아주 귀중한 세계의 기념비가 보존 되어있다.

 

디킬리타스 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550년대에 메소포타미아전투

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헌사 한 사원에 세워져었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콘스탄디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마리

의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미터의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형상의 서펜타인 기둥이 있다.

 

 

 

 

 

 

 

 

 

 

 

돌마 바흐체 궁전과  고대 로마시대의 마차경기장 히포드럼을 들려보고서 이제는 이스탄불의

상징 성 소피아 성당을 들려보기로 하고 입장을 기다린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최대를 자랑하던 성 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입장을 하였어도 카메라 사진을 찍지못하게 하여서 궁전 외관만을 찍었는데

성 소피아 성당은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허용되었다.

 

동유럽 여행 사진 여행기는 21편으로 이여집니다.

감사 합니다.

북한산 7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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