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여행.

통영-거제 여행( 거제포로 수용소 유적 공원) 8.

by 북한산78s 2013. 10. 6.
728x90
SMALL

0
  

 

1175.jpg

 통영-거제여행(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통영 -거제 여행 이틀째로 전날은 거제도에 와서는 꼭 들려보아야 할곳

 외도를 들려보았다.

 

 날씨가 안좋았다.. 비 도 오고 해상에 파도도 심하고 하여서 가까스레

 다녀왔다. 거제에서 숙박은 대명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여행 마지막

 날로 거제포로 수용소 유적공원을 찾아보았다.

 

 마지막날은 날씨가 너무좋은것이다. 전형적인 가을날씨로 한낮에는 여름

 더위를 느낄정도였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대명리조트 를 나와서 유적공원을 찾았다.

 주말이 아니고 평일인지라 관람객도 별로 많지않고 초등학생들이 체험학습

 을 나온모양이다. 요즈음 초.중.고 학생들이 거제를 방문한다면은 필히

 관람을 시키였으면 하는공원이다.

 

 나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몇년후에 태여난세대이지만은 유적공원을

 입장 하기전에 흥남부두철수작전 조형물은 아주실체와같이 리얼하게 

 설치하여 놓아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볼수가있는기회가 되였다.

  

 한반도 에서는 다시는 절대 전쟁이 나서는 안될일이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개성공단이 가동을하고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상봉 을

 하려다가 갑자기 취소를 하여서 몇십년동안 기다렷던 이상가족들을

 실망시키는일이 얼마전에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상처

해금강의 아름다움과 한국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조선소의 장관으로 기억되는 거제도에는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의 상처가 남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엄청난 숫자의 피난민과 전쟁포로가 수용되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부끄러운 듯 옛 터만을 간직해오다 이제는 유적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거제도 주민의 숫자가 20만 명, 당시 피난민과 포로의 숫자가 37만 명이었으니 상상만으로도 당시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한국전쟁 당시의 거제도는 고립된 천연의 수용소로 1,190㏊의 넓이에 40만 명에 가까운 수용인원과 이를 감시, 감독하는 미군 중심의 UN군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수용소였다. 반공포로와 공산포로로 나뉘어져 스스로의 지휘조직까지 갖추며 서로를 공격하였는데 공산포로의 인민재판으로 반공포로 100여 명이 살해당하고 수용소의 소장이었던 미군 토드 준장이 납치당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공산포로의 조기송환을 추진하는 UN군과 이를 반대하는 한국정부의 대립까지 이어지던 포로수용소의 역사는 결국 1953년 판문점을 통한 희망 포로의 송환으로 아픈 시간을 마감하였다.

3년 동안의 수용소 시절은 경비소 집무실과 보급창고의 일부 건물만 남아 당시의 모습을 전한다. 현재 유적공원의 시설들은 거의 모두 공원 건립과 함께 재현된 시설들이다. 옛 수용소의 경비도로를 따라 자리하는 전시관들은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희미한 사진 속 수많은 천막으로 채워진 수용소의 모습과 당시 사용된 빛바랜 물품들은 혼란스러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시각적으로 구성된 유적공원을 둘러보면 어느새 가슴이 갑갑해지며 이념과 동족전쟁의 아픔을 생각하게 된다.

u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