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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한겨울에 찾아 가보아도 좋은 경복궁.

by 북한산78s 201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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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7일 경복궁.

한겨울에 찾아가보아도 좋은 경복궁 입니다.

 

사계절 어느계절에 가보아도 좋은 우리의 궁궐인것 같습니다.

서울도심에서 접근성도 좋와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하차

5번 출구에서 내리면은 바로 경복궁 입니다.

 

 

경복궁을 오후에 방문 하였더니 사진에 정부좋합청사가 옆으로 그늘이 들어보입니다.

 시간이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엿는데 마감시간이 된것 같습니다.

 

위사진은 광화문 현판이 복원되여서 1월 27일 담은 사진 입니다.

아래사진은 벌써 2년전 1월에 현판이 금이가서 언론에 말이 많았엇던

금이간 현판의 사진 입니다.

아주 말끔하게 복원이 되엿지요.

 

 

 

경복궁도 내국인도 많이 찾지만은 외국 관광객도 많찾는 명소가 된것 같습니다.

방문객을 보면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많은것같은데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에서온 방문객같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지않으니 물어 볼수도 없고....

 

 

 

 근정전은 경복궁의 상징이라고 할까요.

그럼 근정전의 의미를 아시나요.

천하의 일을 부지런이 하여서 잘다스린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조하를 거느리고 외국 사신을 맞고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지요.

경복궁 근정전은 정면에서 보고 옆에서 보아도 한국의 건축의 미를 좋합한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축물입니다.

 

 

 

수정전.

고종이 침전과 편전으로 사용하엿던 곳이라고 합니다.

경복궁 경회루.

웅장스럽고 아름다운 건축의 미를 뽐내고 있는 경회루는 남성적인 건축물의 상징이라고 할것

같습니다.

경복궁 안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누각. 국보 제224호.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경복궁의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작은 규모로 지었던 것을 1412년(태종 12)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해 서쪽으로 옮겨 큰 연못을 파고 4각형의 인공섬 위에 더 크게 세웠다. 이때 경회루로 이름지었고,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을 만들었다.

 1429년(세종 11) 중수되었고, 1475년(성종 6) 다시 고칠 때 48개의 석주(石柱)에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을 조각해 조선 3대 장관의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연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었다. 1592년(선조 25) 한양의 백성들에 의해 전부 불타버렸다가 1865년(고종 2)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짓기 시작해 1867년 완공되었다. 앞면 7칸, 옆면 5칸의 중층(重層) 건물로 익공계(翼工系) 양식이며, 팔작지붕인 이 건물은 장대석으로 축조된 기단 위에 서 있다.

 아래층은 외주방형과 내주원형으로 된 48개의 민흘림석주가 상층목조부분을 지탱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방전(方塼)을 깔았고, 우물천장을 아름답게 단청했다. 경회루가 갖는 건축적 특징은 평면구조·칸수·기둥수·부재길이 및 창의 수 등에 〈주역〉의 이론을 적용해 신선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1865년 정학순이 쓴 〈경회루서〉에 건물의 세부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경회루는 기능의 완전성과 독립주에 의한 아름다운 비례의 건축미를 자랑하며, 더욱이 주변 산봉과 서로 어울려 연못에 반영된 절묘한 경관은 누각 건축의 백미이다.

(네이버 지식 인용).

경복궁을 찿아을적에는매우추운 날씨였습니다.

경회루의 연못이 꽁꽁 얼어 붙엇습니다.

 

 

 

북악산은 언제보아도  수도 서울의 상징적인 의미 인것 같습니다.

경복궁 향원정.

경복궁 근정전은 남성적인 의미라고 할것 같지만은 향원정은 여성스러운 의미를

나타 내는것 같습니다.

 

향원정의 연못도 날씨가 추워서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향원정뒤에는 우리역사에서 잊을수가 없는 고종의비 명성황후가 일본자객

한데 시해를 당한 건청전이 잇습니다.

매번 경복궁을 방문 하면서 가본다고 하면서 빠트리곤 합니다.

날씨가 풀리는 봄에는  경복궁을 방문 하면은 꼭 들려보아야 건축물인것 같습니다.

 

 

경복궁 안에 있는 2층 정자. 고종이 건청궁(乾淸宮 :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에 기거하던 1867년 경회루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그 중앙에 지은 것이다.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 다리를 놓아 취향교(醉香橋)라 했는데, 이 다리는 6·25전쟁 때 파괴되고 현재의 다리는 1953년 남쪽에 새로 놓은 것이다

. 정자는 정육각형으로 장대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의 초석을 놓고 그 위에 1·2층을 관통하는 육각기둥을 세웠다. 1층에는 평난간을, 2층에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다. 겹처마이며,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지붕의 중앙에 절병통(節甁桶)을 얹어 치장했다.

( 네이버 지식 인용).

 

 

 

 

 

 

 

 

 

내부에는 일월오봉병(日月五烽屛)으로 둘러쳐진 왕이 앉는 의자인 어좌(御座)가 높은 대 위에 있고 통간으로 높은 천장을 형성하였다. 천장 중앙에는 7개의 발톱을 갖고 있는 용 2마리를 나무로 조각해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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