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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수원 화성을 돌아보다... 1

by 북한산78s 201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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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2013년 2월 3일 수원 화성을 돌아보다.

아침부터 하늘이 짙게 흐린것이 오후늦게 중부지방과 수도권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는것이다. 오늘은 출사를 나가지않으려다가 그냥집에

잇기에는 답답하기만 한것 같다.

 

부지런이 카메라를 챙겨들고 전부터 한번 가보려하였던 수원화성으로 차를

몰고 이동을 한다.

 

생각보다는 고속도로가 수월하게 이동하여서 수원 화성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날씨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것 같아서 어둡고 해서 서둘러서 화성성곽을 돌아

보는데 날씨도 흐리고 해서 카메라에 성곽풍경을 담아도 썩 그리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너무어둡고 선명하지가 않으니말이다.

 

성곽둘레가 6킬로가 못되니 슬슬 여유를 부리면서 걸어도 2 시간이 채못걸리는

것같다. 오후에 눈이 온다고 하니 서둘러 돌아보고 화성 행궁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 입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공사기간 총 33개월)하였습니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습니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습니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1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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