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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강화 덕진진포대.

by 북한산78s 201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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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선은 어떠한 경우라도 함부로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덕진진 ]

 

http://blog.chosun.com/sa78pong

 

2012년 11월 2일 강화도 여행. 덕진진 포대.

강화도를 오전에 전등사를 들려보고 해안도로로 일주를 하게되는데

동막 갯벌과 외포리 포구를 들려보게된다.

 

덕진진 포대는 여간해서는 옆으로 지나치기는 하였어도 관람을 하지는

못하였는데 이번에 들려보게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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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선은 어떠한 경우라도 함부로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덕진진포대.

 

 

 강화도 동쪽의 요새인 덕진진의 돈대와 포대들은 건너편의 김포반도에 있는 덕포진이라는 요새와 함께 급류가 흐르는 염하하구를 지키는 중요한 요새 중의 요새이다. 덕진진은 사적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숙종 때 축조된 용두돈대,강화도 제1의 포대였던 남장포대,대포10문이 설치된 덕진포대가 소속되어 있다.

 

 강변을 따라 왼쪽으로 광성보,오른쪽으로 초지진을 두고 그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상호연락이 수월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부대가 밤의 어둠을 타서 이 진을 거쳐 삼랑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파하였고, 신미양요 때는 미국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으나 화력의 열세로 남장포재와 덕진돈대는 파괴되었다

 

. 미군이 점령하고 보니 60좌의 대포가 포좌에 그대로 있었고 수비군은 한 명도 도망가지 않고 장렬히 전사한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의 성곽과 문루는 1976년 복원해놓은 것으로 사적 제 226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외성의 요충으로서 원래 수영에 예속된 첨사의 진(鎭) 이었으며 1677년 만호를 두고 군관 26명, 병 100명, 돈군 12명, 배 2척이 배치되었다. 1679년 축조된 용두, 덕진돈대 포좌 15문이
설치된 강화 제1의 포대인 남장포대와 대포 10문이 설치된 덕진포대가 이 진에 소속되었다.

 

 

 

 

 

성문인 공조루를 지나면 강화최대의 포대인 남장포대가 왼쪽에 강화해협을 두고 도영해있는데남장포대를 지나 계단에 올라서면 탁 트인 덕진돈대가 보이고 그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다를 향해 경고비가 세워져있다.

 1867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다의 척화비라고도 불리는 이 비석에는 "타국선은 어떠한 경우라도 함부로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1867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다의 척화비라고도 불리는 이 비석에는 "타국선은 어떠한 경우라도 함부로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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