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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모음

2009년 2월 14일 경북 문경 주흘산 산행 2

by 북한산78s 2009.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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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4일 문경 새재 주흘산은 경북에서 충북으로 넘어오는 예전에는 전략전으로는 요충지로

                          조선조  선조 임진왜란  전쟁때에 일본이 조선 을 침공시에 신립장군이 전술적으로 새재에

                          서 일본군을 방어하여야 하는 데 이곳을 뒤로하고 충주 탄금대 벌판으로 이동해서 아갑게도

                          전쟁에 패하는 실책을 범한다.

 

                           그당시 왜군에 선봉장수 유끼나가(小西行長) 는  주흘산과 조령산천혜협곡에 군사는 없고

                           빈진지만이 있는것을 보고 조선에는 이같은 험한곳을 버리다니 조선에는 장수가 없구나

                           하엿다고 한다. 그당시 신립장군이 종사관 김여물에 말을듣고 조령을 지키엿다면은 임진

                            왜란때에 선조가 신의주가지 피신을 안하였을지도 모른는일이아닐까하고 생각을 하여본다.

 

                          요즈음은 전쟁을 좋은 장비로 한다고 하지많은 아직도 전쟁은 일어나지말아야 일인것 같다....

                          주흘산 산행을 끝내고 제 2관문에서 제 1관문으로 내려오면서 우리에 조상들에 지나온 숨결을

                          피부로 느낄수가 있는 아주 좋은 산행 으로 여겨 진다.

                          북한산 78s

                        제 1관문 앞 감나무..

                        문경 제 1관문 앞전경.

                         문경새재 도립공원

 

                         문경새재는 어느계절에찿아도 좋은 관광지 인것 같다. 특히 봄철에 오면은 싱그러운 나무에서

                         잎이 나오는것을 보면은 ..........

 

 

                        문경 도립공원 에 잇는 선비상.

                          2월  14일이 토요일이여서 문경 새재 도립공원을 찿는 이들이 많다.

 2009년 2월 14일 주흘산 주봉 상고대.

상고대는 눈이 내려서 생기는것이 아니고 수증기와 안개가

나무에 붙어서 얼어서 생기는것인데 오늘 주흘산 산행은 상

고대를 볼수가 잇는 기회가 되였다.

 주흘산 정상밑에서 바라보는 상고대..

 주흘산 꼬깔봉(1080) 은 문경 관광호텔뒤에서 산행을 하게되면은 오를수가 있는데

 산을 좋와하는 매니아도 매우 빡시게 올라야 한다^^

 조령 제 1관문..

 제 1관문에서 혜국사로 산행을 하게되면은 만나게 되는 금강송..

아주 곧게 힘차게 바르게 하늘높이 자라고 잇다...

 주흘산 정상에서 제2관문으로 하산시에 만나는 꽃밭서들 인데 작은 바위을 오밀 조밀 만날수가 있다..

 

 제 2관문으로 내려오기전에 조곡골에 아직도 얼음이 얼어 잇다..

 조령 2관문..

 

 

 

 

 

 

 

 

 

 

 전날 온비 영향 때문인지는 아닐 지언들 계곡에도 맑은물이 담아 잇어서 보는이에 눈을 즐겁게 한다.

 

 드라마  왕건 궁 예 최후에 촬영장.

 

 

 

 교귀정 소나무....

 

 문경 새재 주막 옛 모습을 복원 하여 놓앗다.

 

 

 조령원터.엣날 관리들이 숙식을 하고 쉬여서 가고 하엿던 곳이라고 한다..

 

 

 

 

 왕건 촬영장으로 진입 하는 다리 인데 시간이 없어서 관람을 못한다..

 왕건 촬영장.........

  문경읍 상초리(上草里) 소백산맥 조령(鳥嶺)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문.

1966년 3월 22일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제1·제2·제3관문 및 부속성벽이다. 옛날에 영남에서 서울로 가려면 문경에서 주흘산(主屹山:1,106m)을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라 때는 주흘산의 한 갈래인 대촉산(黛蜀山)을 넘어 계립령(鷄立嶺)으로 다녔고 조선 전기부터는 조령이 개척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곳에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은 방위시설을 축조해야 한다는 논의를 낳았다. 현지 실측(實測)이 시행되고, 1594년(선조 27)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충주 사람으로 수문장(守門將) 출신인 신충원(辛忠元)이 조정의 결정에 앞서 조령에 머물면서 단독으로 설관(設關)에 착수하였다. 그가 이루어놓은 첫번째 시설이 지금의 중성(中城)이다. 중성은 1708년(숙종 34) 크게 중창(重創)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2관문이다. 숙종 때 제2관문에서 3km 떨어진 곳의 남적(南賊)을 방비할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主屹關)이라 하였다. 이들은 1890년대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육축(陸築)에는 홍예문(紅霓門)을 열고, 성벽에는 총구멍이 있는 성가퀴를 돌리고, 한쪽에 큼직한 수구문(水口門)을 뚫었다. 숙종 때 조령 재 위에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조령산성(鳥嶺山城)을 쌓았다. 이것이 곧 제3관문으로 현재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위치한다. 제3관문은 육축만 남겨 놓은 채 불타버려 1977년 복원하였다.

제1·제2·제3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한다. 높은 봉우리 6분선(分線)에서 끝났다가 다음 골짜기에서 다시 이어져 초곡 ·중성 ·조령산성의 성벽을 이룬다. 동화원(桐華院)을 비롯하여 진(鎭)과 군창(軍倉)의 터가 있고, 경상감사(慶尙監司) 신임·후임자가 서로 교인(交印)했다는 교구정(交龜亭)의 터도 남아 있다. 문경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조 영남 역대 관찰사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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