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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이모저모

속보 산행에 달인 송병연 교사.

by 북한산78s 2009.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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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 인물] 속보산행의 달인 송병연 교사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까지 서울 다섯 개 산에 걸쳐 55㎞에 달하는 오산종주(일명 불수사도북)를 8시간50분만에 완주, 인월 마을회관~바래봉~정령치~성삼재~천왕봉~밤머리재~덕산까지 91㎞에 달하는 지리산 태극종주를 18시간52분만에 주파,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35㎞ 남짓 되는 지리산 종주를 5시간55분만에 주파, 한라산 성판악~백록담~관음사까지 20㎞를 2시간40분만에 걸었다면?


▲ 내년 중 히말라야 14개 거봉 중 한 곳을 등정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암벽훈련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 설악산 태극종주 중에.
인간이 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세운 사람이 있다. 바로 서울 관악구 난우중학 체육담당 교사인 송병연(46) 선생이다. 오산종주와 지리산 종주는 시속 6㎞, 태극종주는 시속 5㎞, 한라산 종주는 시속 7㎞에 가깝게 걸었다. 평지도 아니고 산길을 시속 5~7㎞로 간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경보선수도 잘 닦인 평지에서 시속 10㎞ 정도로 간다.

어떻게 가능할까 싶어 그를 지난 10월30일 만나 인터뷰 후 학교 주변 삼성산과 관악산에 함께 올랐다. 초입에선 조금 봐 주는가 싶더니 이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이 바로 턱밑까지 차올랐다. 순식간에 땀범벅이 됐다. 삼성산 반쯤 지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갑자기 시작한 산행이라 랜턴도 준비되지 않았고, 복장도 정장한 상태였다. 신발만 부랴부랴 빌려 정장에 운동화 차림이라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 길이, 관우중에서 삼성산~연주대를 거쳐 사당역으로 하산하는 이 코스가 그의 퇴근길이다. 약 12㎞에 달하는 거리다. 5년여 전부터 그는 이 길로 퇴근하기 시작했다. 매일 산에 가고 싶어 그가 개발한 길이다. 오후 4시30분 퇴근시각에 남들은 하산하지만 그는 역으로 산으로 향했다.

▲ ① 올 8월 서울 오산종주 중 수락산 정상에서. ② 올 10월 5시간55분 기록을 세운 지리산 종주 중에. ③ 지리산 종주 기록을 같은 산악회 회원이 체크한 초시계를 확인하고 있다.
처음엔 4시간여 걸렸다. 보통 사람치고는 조금 빠른 걸음에 불과했다. 매일 반복해서 하다보니 1년 뒤엔 3시간으로 단축됐다. 시간당 4㎞를 걸은 셈이다. 겨울엔 해가 빨리 넘어가 3시간 걸리는 산행도 길이 어두워져 랜턴이 필요했다. 더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몇 년을 반복하니 재작년부터 2시간으로 줄었다. 요즘은 2시간 이내로 걷는다. 시간당 7~8㎞까지 줄어들었다. 겨울에 해가 짧아도 어두워지기 전에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오후 4시30분에 퇴근해서 12㎞ 산행 후 삼성동 집에 도착한 시각이 저녁 7시쯤. 한 마디로 철인이라고 하면 딱 적확할 인물이다.

그는 원래 단거리 운동선수였다. 선수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다. 초등 6년 때 학교에서 달리기 시합이 있었다. 고학년을 중심으로 전교생이 기록을 다퉜다. 그는 학교 대표선수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 학교 대표선수로 뽑혔다. 여러 학교가 참가한 교육청 대회에 출전해서도 입상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혜성같이 등장한 무명의 선수였다. 육상 담당 선생과 코치들은 “저 애가 누구냐?”고 웅성거렸다.

육상 코치는 선수생활하라고 닦달했다. 일반 학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감독과 코치들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계속 따라왔다. 할 수 없이 중학교에 들어와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삼성산~관악산~사당역 12㎞가 퇴근길

중학교 땐 전성기였다. 입상 기록도 수두룩했다. 서울체고 특기생으로 진학했다.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최고 기록이 10초9까지 나왔다. 국가대표선수와 올림픽 출전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고교 진학해서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기록 단축에 한계를 절실히 느꼈고, 선수생활에 대한 위협과 동시에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이대론 포기할 수 없다고 스스로 결심했다. 선수생활이 안 되면 공부로 승부를 걸자고 각오를 다졌다. 고교 2년 마칠 때쯤부터 공부에 매달렸다. 하루 3~4시간씩 자고 공부했다.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했다. 그의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의 또 다른 인생이 산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아마 선수생활을 계속했다면 그가 산을 이렇게까지 가까이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 알프스산우회 회원들과 함께.
대학 2학년 때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산악반을 조직해 인수봉을 등반했다. 첫 암벽등반 매력에 흠뻑 빠지면서 암벽과 워킹을 동시에 하며 산을 즐겼다. 방학 때만 되면 어김없이 장거리 산행에 나섰다. 교직 발령 받고나서도 산행은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취미생활로 더 깊이 빠졌다. 부인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속한 산악회만도 3개다. 다 이유가 있어 가입했다. 장거리 전문 산악회인 알프스산우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인 정기산행에 빠진 적이 없다. 동호인 중심으로 활동하는 산으로산악회에도 가입해 있다. 안내산악회인 소월산악회에도 속해있다. 틈만 나면 산을 찾는 그에게 주로 주말에만 산행하는 동호인 중심 산악회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여기선 주로 장거리 산행을 이용한다. 매번 승용차를 가지고 가기엔 너무 불편해서 안내산악회에도 가입한 것이다.

산악인 중엔 오은선을 가장 좋아해

비공식적으로 그가 속한 관우중학에도 산악회를 만들었다. 매주 수요일 교장 선생님과 산을 좋아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삼성산과 관악산을 오르내린다. 회원이 약 20명 가까이 된다. 지난해에 그가 산에 간 날을 체크해보니 365일중 3일을 뺀 362일이었다. 가히 상상하기 힘든 기록이다.

지리산 종주, 한라산 종주, 설악산 종주, 영남알프스 종주 등 그가 해보지 않은 종주코스는 거의 없다. 그가 원체 빠르게 산행하다보니 주변 사람이 시계로 그의 기록을 정확히 체크했다. 그게 지난해 10월25일 지리산 종주할 때였다.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으니, 전화로 산행위치를 정확히 연락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중간 구간 시간도 체크하고, 마지막 도착지점을 알리니, 시침 시간까지 정확히 5시간55분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한라산은 속보산행하기엔 딱 적합한 산”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판악~백록담~관음사에 이르는 20㎞ 거리를 2시간40분만에 완주해 버렸다.

▲ 알프스산우회 회원들과 백두대간 종주 길에서.
속보산행 하는 그를 두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산에서 왜 미친 짓 하나?” “뛰어다니러 산에 왔나?” “속보산행 하면서 자연을 볼 수나 있나?” 등등의 질문과 비난을 동시에 듣고 있다. 그는 그럴 때마다 대답한다.

“내가 걸음이 빠를 뿐이지. 달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산행기록은 아무 의미도 없다. 산행은 산을 즐기기 위해 오르는 것이지, 기록을 위해서 오르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한다. “빠른 걸음이지만 다른 사람 보는 것 이상으로 자연을 즐기면서 걷는다”고 그는 강조했다.

산행경력 26년에 그가 가보지 않은 산이 거의 없다. “단지 500m 이하 되는 산은 아직 가지 않고 있다. 나중에 나이 들어 체력적으로 힘들 때 다니기 위해서 아껴두고 있다.”

그에게도 목표와 꿈이 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내년쯤 히말라야 14개 거봉 중 한 곳을 꼭 등정하고 싶다고 했다.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없고, 다만 팀과 비용이 걸림돌이다. 비용이 많이 들어 부인 몰래 적금까지 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팀을 이뤄 간다면 언제 어느 팀이던 합류하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의 꿈은 6대륙 최고봉 등정을 하나씩 이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악인 중에 오은선을 특히 좋아한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밝혔다.
“40세를 훌쩍 넘긴 적지 않은 나이에 히말라야 14개 거봉 등반을 위해 오로지 산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지금 속보산행도 히말라야 14개 거봉 중 한 곳을 오르기 위한 체력단련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산에 오른다고 했다. 거의 전문산악인 수준의 산행자세다. “땀 흘리고 거친 숨을 내쉬는 순간 느끼는 희열과 목표를 이뤘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 지금은 아마 중독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도 퇴근길에 삼성산과 관악산으로 발길을 향한다.


 글 박정원 차장대우 jungwon@chosun.com
 사진 송병연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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