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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모음

7월 23일 지리산 산행: 2 홀로 어둠 깨우는 그는 부처가 숨긴 사람?

by 북한산78s 201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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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림 스님

 

홀로 어둠 깨우는 그는 부처가 숨긴 사람?

이틀, 사흘 ,일주일…, 그러다가 21일 용맹정진 도전
캄캄한 산길 눈에 불켠 동물 앞뒤 동행 “관세음보살”

 

 밤이 깊어지고 세상이 잠을 자면 묘향대는 홀로 깨어납니다.
 “세상이 잠을 자는데 나 홀로 깨어있구나!”
 경허 선사의 말처럼 수행자는 이렇게 홀로 깨어나 어둠을 밝힙니다. 호림 스님과 저는 밤이 깊어지자 법당에 함께 누웠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밖으로부터 목탁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새벽 3시가 된 것입니다. 어느새 일어난 스님이 절을 돌면서 도량석을 시작한 것입니다. 도량석은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면서 깊이 잠든 만물을 깨우는 의식입니다.

 수행의 성패는 간절한 ‘切’자 한자에

  스님의 예불은 긴시간동안 계속되었지만 어느 한 순간도 간절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수행의 성패는 ‘간절 切절’자 한자에 달려 있다는 어느 선사의 말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예불이 끝난 뒤 묘향대 뒤 큰 암벽 아래서 솟아나는 샘가에 오니 앙징맞게 생긴 다람쥐 한마리가 스님이 호박죽을 끓이려고 호박을 쓰고 그의 몫으로 남겨둔 호박 속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가가자 흘긋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금 맛있는 식사를 계속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묘향대는 고립무원이 됩니다. 한번 눈이 쌓이면 길과 길 아닌 곳의 구분은 사라지고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도 없을 만큼 온통 하얀 눈뿐입니다. 그래서 한 발을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일쑤여서 이곳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스님은 저 다람쥐와 벗해서 한 겨울을 지나곤 했을테지요.

 

사람이 다가가도 흘긋 한 번 쳐다보고 그뿐인 다람쥐

  호림 스님이 이곳에 오기 한참 전 묘향대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선승이 있었습니다. 그는 결혼해 처자식까지 있었지만 출가해서 이런 심산에 들어와 홀로 생사를 건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 그의 속가 아들이 방학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뵙겠다면서 묘향대로 산행에 나섰다가 그만 눈밭에서 조난을 당해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매정하게 인연을 끊어버린 자신을 찾아오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들의 주검을 안은 그 선승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안타까운 세인들의 마음을 느꼈음인지 호림 스님이 무심히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그걸 짊어지고 살아갈 것 같으면 중노릇 그만해야지!”
 그런 결기가 없다면 애초 이런 심산의 독살이(혼자 사는 것)를 결행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호림스님은 화엄사에서 살던 1978년 묘향대의 그 스님에게 쌀 반가마씩을 두번 져 날라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묘향대는 대찰 화엄사에 소속된 말사입니다. 그 때 보았던 그 스님의 처절한 수행상을 수십년간 뇌리에 간직해오다가 호림 스님도 3년전 여기에 왔을 것입니다.

 


 

“그걸 짊어지고 살아갈 것 같으면 중노릇 그만해야지!” 한마디 툭

  묘향대 살이는 무엇하나 녹녹한 게 없습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상하는 음식 대신 쌀이나 설탕을 가져오는데, 3㎏ 설탕 하나도 천근의 무게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호림 스님은 노고단에서 이곳까지 무려 43㎏이나 되는 프로판가스통을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왔다고 합니다. 범인으로선 상상키 어려울 일입니다. 그런데 처음엔 안쉬고 오려니 힘들었는데, 임걸령에서 한번 쉬고 오니 아주 수월하더랍니다.
 나이 50이 되어 한창 때는 지났음에도 오히려 지금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아무리 경사진 길을 오르면서도 숨을 가쁘게 몰아쉬지 않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오를 수 있다니 이 정도면 득력(수행으로 힘을 얻음)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묘향대는 불가에서뿐 아니라 선가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 중의 한분인 개운조사가 250년 전 수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묘향대를 그 때 개운조사가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기(氣)수련을 하는 이들 사이에선 개운조사가 아직도 묘향대 인근 금강굴에 생존해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합니다.

 각 절에서 보는 능엄경주석서도 대부분 개운조사가 저술한 것입니다. 능엄경은 선가에서 가장 아끼는 보물 중의 보물 같은 책으로서 수행 중 일어나는 온갖 경계와 장애를 어떻게 극복하고 견성 성불에 이를 수 있는지 상세하게 서술해놓은 책입니다.
 호림 스님도 이곳에 와서 염불과 주력(주문을 욈)만 했다고 했지만 그의 책상엔 능엄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단 한숨도 자지않고 정진, 인간 한계 뛰어넘는 극한 시험

  호림 스님은 3년 전 이곳에 와 처음으로 용맹정진을 제대로 해보았다고 합니다. 용맹정진이란 한 숨도 잠을 자지않고, 등을 방바닥에 붙이지않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는 묘향대에 들어오기 전엔 졸려서 단 하루도 용맹정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1박2일, 다음엔 2박3일. 일주일…. 그렇게 하다보니 21일동안 용맹정진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일반 사찰 가운데도 해인사 선방 등은 안거 때마다 7일씩 용맹정진을 하지요. 또 철산 스님이 선원장으로 있는 문경 대승사에선 안거 때마다 21일씩 용맹정진을 하기도 하는데, 21일간 단 한숨도 자지않고 정진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한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아무도 감시하거나 경책하는 이 없는 이 곳에서 장기간 잠을 안자고 수행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21일 용맹정진에 도전해 21일은 다하지 못하고 15일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21일은 채우지 못했지만 그 때부터 자신이 생겨 천수다라니(천수경 주문)를 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하루에 108번을 낭독하기도 어렵더랍니다. 그런 속도로 매일 왼다면 백만독을 할려면 10년이 걸리겠더랍니다. 그렇게 10년을 할 작정으로 했는데, 차츰 속도가 붙더니 백일만에 만독을 하고, 그 다음엔 더욱 속도가 붙어서 백일만에 십만독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후엔 더욱 더 가속도가 붙어서 백일만에 백만독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08 낭독도 어려웠는데, 백일만에 만독, 이후엔 백만독까지

▲ 호림 스님

 

 

선가에선 참선외엔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하기도 하지만, 옛부터 선사들도 천수주력으로 득력을 한 경우가 많습니다. 경허의 맞제자로 천진 자비 보살이었던 수월 선사도, 용성 선사도, 숭산 선사도 천수주력을 통해 득력을 했지요. 수월 선사는 천수주력을 통해 세가지 능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어떤 것을 들어도 잊지 않는 불망념지不忘念智와,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병자를 낫게 하는 치유력과, 수마를 완전히 극복해 전혀 잠을 자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호림 스님도 몇년전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2년전 12월 18일이 은사 스님의 생신이어서 구례쪽으로 내려갔는데 눈이 많이 내려 눈이 허리까지 찼다고 합니다. 문수암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데 갑자기 눈이 더 많이 내려 가슴까지 차더랍니다. 그 10분의 1만 눈이 와도 이런 고지대에선 길과 길 아닌 곳이 도저히 분별이 안돼 나다닐 수 없는 일이지요. 다음해 그보다 훨씬 적은 20센티미터의 눈만 내렸는데도 절 밖으로 한발짝도 나설 수 없더랍니다. 그런데 당시엔 그토록 눈이 많이 싸였는데도 길이 훤하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수행에 집중하면 그런 경계가 보이기도 합니다.

 폭설이 가슴까지 차 천지 분간도 없는데 길이 훤해

  호림 스님이 한번은 피아골에서 달빛도 별빛도 없는 칠흙처럼 어두운 한밤중에 임걸령을 지나오는데 앞에서 불이 반짝이는 동물이 앞서가다간 뒤돌아보고, 또 몇발자국 가다간 뒤돌아보더랍니다. 그리고 뒤를 보니 뒤에서도 눈에 불을 켠 동물이 뒤를 따라오고 있더랍니다. 그 동물은 아마도 먹잇감을 구할 수조차 없는 추운 겨울 모처넘 만난 사냥감을 포위해 쫒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너무 캄캄해서 묘향대에 못올 뻔 했어요. 그들이 눈에서 후레시를 켜주어 길이 보여서 잘 왔지요. 그들이 내 길 안내자였어요. 나무 관세음보살!”
 같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맞느냐 하는 것은 그 상황을 맞는 마음 가짐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동물을 나를 잡아먹으려는 원수로 지금까지도 끔찍하게 여길 수 있었을 것이지만, 호림 스님은 그 동물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지요.”

 “그들이 눈에 후레시를 켜줘 잘 왔지요, 나무 관세음보살”

▲ 호림 스님과 조현 기자
그는 객관적인 상황조차도 마음의 현현이라고 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제가 히말라야 오지를 함께 여행했던 달라이라마의 제자 청전 스님으로부터 한 침대에서 자면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20년전 인도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 전국의 산천을 만행했는데, 그 때 만난 구례의 한 노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해주었습니다. 노인은 피리를 아주 잘 불었는데, 어느날 추운 겨울 술에 취해 반야봉에서 피리를 불고 있었답니다. 그는 추위도 잊은 채 술에 취하고 피리 소리에 스스로 취해 지리산이 되었더랍니다. 그냥 그렇게 피리를 불다 쓰러져 동사할수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위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호랑이 수십마리가 주위에 자신을 에워싸주고 있더랍니다.

 그렇게 놀라운 체험을 한 노인은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그런 체험을 하고 싶어서 다시 술을 마시고 반야봉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 때는 아무런 욕망 없이 무욕으로 피리를 불던 예전과는 달리 무언가 강렬한 욕망이 꿈틀댄 모양입니다. 한참 피리를 불고 있는데, 등에서 미끈한 게 느껴져 눈을 떠보니, 이번엔 호랑이가 아니라 수많은 뱀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더랍니다. 마음에 따라 미물도 호응하는 것일까요.

 적이나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나의 스승

  하긴 묘향대의 선배 선사인 개운조사의 말대로 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소가 마시면 젖이 되지만,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됩니다.
 똑같은 피리를 불더라도, 똑같이 사나운 동물을 만나더라도 사람들의 대응하는 태도는 다릅니다. 자신을 내려치는 도끼에 독을 내뿜는 것이 아니라 향기를 내어주는 향나무도 있으니까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적이야말로, 또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나의 자비심을 깨워주는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자 지리산 전체를 조망하는 바위 위에 올라갔습니다. 번뇌와 세사와 잡사에 비유되는 구름이 지리산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무심의 하늘과 대비해 번뇌와 망상, 증오와 애착으로 비유되곤 하던 그 구름이 운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선 내 마음이 끌고 다니던 그 모든 것이 진리였고, 어머니였고, 바다였습니다.

 조현 종교전문 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은지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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