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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의왕 청계사..

by 북한산78s 2019.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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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청계사..


2019년 신년 들어서 청계산  남쪽 자락에 있는 청계사를 들려본다.

1284년(고려 충렬왕 10) 평양부원군 조인규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였고,

 이후 조인규 가문의 원찰로서 후손들이 약 500년간 중창을 거듭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도성 안의 사찰을 폐하고 관청을 세우자 불교 쪽에서

 이 절을 선종의 본산으로 정하였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이색, 변계량 등 당대 문인들이 즐겨 찾으며 절을 주제로

시를 지었으며, 조윤, 정송산 등은 이곳에서 출가하거나 칩거했다.

경내에 신라 석등과 부도 조각 일부가 남아 있으며, 극락보전과 종각, 삼성각,

산신각, 수각 등 3동의 요사를 비롯해 10채의 건물이 있다.

 동종(경기유형문화재 96)과 목판(경기유형문화재 135) 등 문화재도 있다.




























동종은 1701년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 115㎝, 지름 71㎝이다.
한동안 봉은사에 봉안되어 있다가 1975년 다시 청계사로 옮겨 왔는데, 조선후기 범종 중 대표적인 종이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연꽃 줄기를 쥐고 구름 위에 서 있는 보살상 4기가 조각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대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1284년(충렬왕 10) 시중 조인규(趙仁規)가 막대한 사재를

투입하여 중창하고 그의 원찰로 삼은 뒤부터이다.

 그때부터 이 절에는 100명이 넘는 수도승이 상주하였다. 자손들이 여기에 그의 사당을 짓고,

 전장과 노비를 두어 대대로 제사를 지냈다.

1407년(태종 7) 조정에서는 이 절을 자복사(資福寺)로 지정하고 천태종에 소속시켰으며,

 1431년(세종 13)조인규 영당을 중건하였고, 연산군이 도성 내의 사찰에 대한 폐쇄령을

내렸을 때 이 절은 봉은사(奉恩寺)를 대신하여 선종본찰(禪宗本刹)의 기능을 행하는

 정법호지도량(正法護持道場)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이 절의 소속 전장과 노비를 모두 관에 소속시켰고, 1689년(숙종 15) 3월 화재로

 모든 건물이 불탔을 때 성희(性熙)가 중건하였다.

 1761년(영조 37)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이 절에 원당을 설치한 뒤 밤나무 3,000주를 심고

원감(園監)을 두었으며,

1798년(정조 22)조무의(趙武毅)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1876년(고종 13) 3월 26일 실화로 수십 칸의 건물이 소실되자 4년 후인 1879년에 음곡(陰谷)이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종교 탄압정책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이어 오다가 1955년 비구니

아연(娥演)이 주지로 취임한 뒤 중창을 시작하였고,

 월덕(月德)·탄성(呑星)·월탄(月誕) 등이 그 뜻을 이어 당우를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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