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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부평 항교..

by 북한산78s 201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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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향교.

인천 지역에는 향교가 두 군데 있는데 오늘은 조선 시대에 부평지역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부평 향교를 찾아 본다.

 

인천의 진산 계양산 아래에 있는 향교는 지금은 복잡한 도심의 주택가 속에 자리를 잡고있다.

부평향교는 1990년 11월 9일에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 12호로 지정 되었다.

 

현재는 인천 향교재단 부평 향교에서 관리 하고 있다.

부평 향교를 찾아보니 규모는 아주작은 규묘이지만은 조선시대에 부평지역의 교육을 자리잡은

곳으로 관립건물 6동으로 향교가 처음으로 설치된것은 고려 인종 5년 (1127년)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으로 건물이 소실되자 후에 재건 되었다고 한다.

애초 부평향교는 일반적인 향교 건물배치인 대성전. 동무. 서무. 동재. 서재 이외 전사 청. 공수고

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고 있다.

 

1921년도에 명륜당 을 중수 한것을 필두로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한국 향교의 전형적인 전당 호모 의 방식을 취하여 명륜당. 재실등 교육시설을 앞에 놓고 그뒤로는

대성전과 동.서무의 문묘 시설을 배치 하였다.

 

 

 

 

홍살문

홍살문은 향교 여역의 표시이며 대소인을 막론하고 하마 한다.

말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문이다.

 

명륜당.

유생들이 사서 오경을 공부하고 강독하며 초시준비와 향음주례 및 각종행사를 하던 곳이다.

 

 

 

 

 

 

 

 

 

 

 

 

 

 

부평향교는 현재의 경인교육대학교에서 북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려인종 5년(1127)왕명에 따라 수주()향교가 계양구 오류동 산4번지에 세워졌는데 당시 전국 56주가 모두 이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수주의 후칭인 안남도호부가 의종 19년(1165) 계산동(온수골)으로 이전됨에 따라 당시 안남향교도 안남산 남쪽(현재 계산2동 한우리 아파트 부근)에 이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 충선왕 2년(1310) 부평부가 되면서 부평향교로 고쳐 불러왔고 병자호란(1636)을 맞아 문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조선 숙종14년(1688)에 현재의 위치에 문묘를 재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동무·내삼문 등이다

 

. 부평향교에는 명륜당, 재실 등 교육시설을 앞에 놓고 그 뒤에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의 문묘시설을 둔 우리나라 향교의 전형적인「전당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열성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대성전과 동·서무, 동·서재는 맞배지붕형식으로 되어 있고, 명륜당은 팔작지붕이다. 중국성현5성위와 한국18현을 모신 석전대제는 매년 음력 2월과 10월 초정일에 봉해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평향교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3.6,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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