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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경복궁 (만속박물관)-앙드레김 패션세계...

by 북한산78s 2014.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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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6일 경복궁 민속박물관.

경복궁을 방문하고 보너스로 민속박물관을 들려보면서 우리에 뇌리에서

멀어져가는 분 앙드레김 의상세계 자료 를 기증한것을 전시하여 놓았다.

앙드레김은 외모와 억양 스타일이 특이하고 특히 머리의 헤어스타일이

특이 하였던것으로 기역이 된다.

.

2008년도 말경 에 인천 송도신도시에 음식점을 들어갔었는데 그때 앙드레김

그분이 식사를 하러 들어오셨는데 그당시 만난던적이 있었던 기억이

생각이 난다.

항상 입고다니는 하얀옷을 입으셨던 것으로 기역되는데 전시실을 들려보니

그당시에 항상 착용하였던 옷이 전시되여 있는것이다.

경복궁 민속박물관을 들려보면은 한번 들려볼 장소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영원한것이아니고 언제인가는 빈손으로 떠나게 마련인데 새삼스레

인생의 삶을 다시한번 뒤돌아보게 하는것 같다.

 

 

 

 

 

 

 

 

 

본명은 김봉남이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현재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파발동)에서 농사를 짓던 집안의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한국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패션쇼를 구경하다 디자이너 최경자와 인연을 맺었고, 최경자의 양장점에서 일을 도왔다. 1961년 국제복장학원에 1기생으로 입학하여 1년 간 패션 공부를 하였다. 이 무렵 프랑스 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앙드레’라는 가명을 지어주었다.

1962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앞의 ‘GQ 테일러’라는 양복점 한 켠을 빌려 ‘살롱 앙드레’라는 의상실을 열었고, 그해 12월 반도호텔에서 첫 패션쇼를 개최하며 한국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로서 패션계에 데뷔하였다. 1964년 당시 톱스타였던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것을 시작으로 은막 스타들의 의상을 디자인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1966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연 것을 시작으로 1966년 워싱턴, 1968년과 1970년 뉴욕, 1972년 볼티모어, 1975년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 초대되어 한국의 패션을 세계에 알렸다. 이집트 피라미드 앞(1994년)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2006년)에서의 패션쇼는 특히 많은 화제를 모았다. 1980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지명 디자이너로 활약하였고, 1988년부터 2000년까지의 올림픽에서 IOC 초청으로 개최지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1999년 옷로비의혹사건으로 국회 청문회 참고인으로 나서 본명이 알려진 후 패러디와 성대모사의 대상이 되며 더욱 유명세를 탔고, 아동평화대사, 유니세프 친선대사,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홍보대사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2002년 이후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건 화장품·보석·속옷·아동복·골프복·에어컨·신용카드 등이 출시되었다.

1982년 이탈리아 정부의 문화공로훈장, 1997년 화관문화훈장, 2000년 프랑스 정부의 예술문학훈장, 2008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2010년 8월 13일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한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한국 패션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앙드레김은 여성의 우아함을 최대한 끌어내는 로맨티시즘에 바탕을 둔 의상을 고집하였다. 한국의 전통문양을 비롯한 각국의 전통문양과 자연에서 모티브를 딴 문양을 적극 응용하고, 화려한 컬러를 자유롭게 이용하였다. 패션쇼에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모델로 등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하였는데 그의 무대에 서야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입양한 아들을 한 명 두었다. 76세에 대장암과 폐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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