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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과거로의 여행 .수도국산 박물관...

by 북한산78s 201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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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chosun.com/blog.screen?userId=sa78pong 

 

 

2012년 12월 4일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찿아 본다.

과거로 60년대 7-80연대의 과거로 돌아가보는듯한 수도국산 박물관이다.

 

그당시 모든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어서 힘든 삶이였지만은 지금도 문열고

골목길을 나서면은 구수한 밥짓는 냄새와 그리운 이웃이 나를 맞이해줄것

만 같다.

 

그달동네 옛 골목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만은 수도국산의 옛모습과

실존인물을 복원하여서 전시하여놓았다.

 

부모님세대에는 정겨운 시절의 추억속의 시간여행으로 자식세대에는 고단하

하지만은 열심히 살았던 60-70시대의 삶의 현장을 재현하여볼수있는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사실 이글을 쓰고있는 저도 70년대말 인천으로 상경하여서 수도국산(일명수도곡산)

달동네 사글세방에서 10여년을 살았엇는데 지금은 재개발을 하여서 아파트촌으로

변신을 한것을 보면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당시에는모든이들이 살림살이가 풍족하지못하였기에 박물관에 전시해놓은것을 보면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느낌이나는것 같다.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다시 생각 난는것은 연탄을 제시간에 맞추어서 갈지를 못하여서

맨날 꺼트리고 번개탄으로 다시살리려면은 그연기와 함께 시꺼먹게  변한부뚜막을 생각

나게한다.

60-70년대를 다시기억에 새기려면은 한번 수도국산 박물관을 찿아보는것도 추억의 여행

거리가 되지않을까 한다.

 

 

 

 

 

 

 

 

 

수도국산(水道局山) 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다.
이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이 자그마 한 언덕은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숲이었다.


송림산은 산언덕 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송현(松峴, 솔 고개)동, 송림(松林, 소나무 숲)동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산이름이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 개항 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 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 보가 큰 고민이었다.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水道局)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 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 은 이 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생겼다.

 

 

달동네 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 미로, 유래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중반 사이에 도 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 들 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 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노 후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달동네의어제와 오늘

달동네와 같은 ‘도시 저소득층의 집단 밀집 주거지’의 시초는 일제 강점기 ‘토막민촌’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막민촌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들이 주인 없는 산비탈이나 개천가에 허가 받지 않고 지은 것이다.
달동네도 그 중 한 형태인데, 일제의 식민정책, 8.15해방, 한국전쟁(6.25) 그리고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집중되고 주택이 부족하게 되자 빈민계층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동네 주민들은 국가 소유의 땅을 무단 점거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주 철거되거나 집단 이주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도시 내에서 일자리를 얻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따라서 쫓겨나면 다시 도시의 다른 곳에서 무허가 집을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였다.

달동네 살림집은 이렇게

달동네는 산비탈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집들이 자리하면서 이루어졌다. 좁고 비탈진 곳에 집을 짓다 보니 공간의 여유가 없는 반면 많은 기능을 담게 되었다.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 하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해 냈다. 따라서 전면적인 개축보다 낡고 오래된 부분을 개보수하거나 자투리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평면은 지형에 따라 ㅡ자, ㄱ자형을 기본으로 하는데, 증축과 개축을 하면서 조금씩 바뀐다. 수도국산 달동네 가옥 형식은 1960년대 후반까지는 목조 흙벽에 초가지붕 혹은 루핑(유지)지붕이 일반 적이었지 만 1970년대 전반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지붕은 기와지붕이나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 었다.

 

 

 

 

 

 

 

 

 

 

 

 

 

 

 

 

 

 

 

 

 

 

 

 

 

 

 

 

 

 

 

 

 

 

 

 

 

 

 

 

 

 

 

 

 

 

 

 

 

 

 

 

 

 

 

 

 

 

 

 

 

 

 

 

 

 

 

 

지하철 이용시

‘동인천역’에서 하차하여 ‘4번 출구’ (중앙시장,솔빛마을주공아파트)의 오른편으로 나오신 후, 다시 왼편의 ‘역전샛길’을 통과하여 나오시면 큰 길이 나오는데, 횡단보도 건너편에 ‘송현시장 입구 아치’가 보입니다.
길을 건너 송현시장 입구 아치 (제과점 뚜레쥬르와 인천종합동물병원 사이)를 통과해서 약400m 정도 오르막 길을 올라오면 '온사랑교회'를 지나 박물관에 도착합니다.

인청시내버스 이용시

인천시내버스노선 :

  • 미림극장앞 하차 도보7분 (일반 12, 16, 17, 17-1, 41, 62, 62-1/ 급행간선 901, 908)
  • 복음병원앞 하차 도보7분 (일반 2, 3-1B, 10, 12, 17, 41, 46, 62, 62-1 )
  • - 2009년 시내버스 변경 노선도 적용
미림극장앞 하차시
버스에서 하차 후 ‘화도진공원 방향’으로 200m 걸어오시면 길 건너편 모퉁이에 ‘송현시장 입구 아치’가보입니다.
그쪽으로 횡단보도 건너서 제과점 '뚜레쥬르'와 ‘인천종합동물병원’ 사이길로 진입하여 약400m 정도 올라오시면 왼편에 '온사랑교회'를 지나 박물관에 도착합니다.
복음병원앞 하차시
버스에서 하차 후 배다리방향으로 10m 정도 가면 ‘벧엘컴퓨터’와 ‘SK 텔레콤’ 사이길이 나옵니다. 그 골목으로 약 70m정도 가면 오른편에 ‘동구청소년수련관’이 보입니다. 거기서 왼쪽 모퉁이의 구멍가게를 끼고 약300m 정도 올라오시면 박물관에 도착합니다.

자가용 이용시

오시는길

제1경인고속도로 가좌 IC (동인천방향) ⇒ 재능대학 앞 ⇒ 송림오거리 ⇒ 박물관
‘송림오거리’에서 동인천역 방향(배다리쪽)으로 10m 지점에 박물관 이정표가 보입니다. 여기서 오른편 골목 (SK텔레콤)으로 우회하여 들어옵니다. 50m 지점에 ‘경기부동산’이 있는데 그 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약400m정도 직진하면 오른편에 배모양의 박물관 건물이 보입니다.
제2경인고속도로 종점⇒ 동인천방향 ⇒ 배다리 삼거리 ⇒ 화도진길 ⇒ 박물관
‘배다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화도진길’로 진입합니다. 500m 정도 직진 후 삼거리 오른편 모퉁이에 ‘송현시장 입구 아치’가 보입니다. 제과점 '뚜레쥬르'와 ‘인천종합동물병원’ 사이길로 진입하여 약400m 정도 직진하면 왼편에 박물관 건물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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