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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2012년 5월 1일 수락산 (석림사-노강서원)..

by 북한산78s 201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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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chosun.com/sa78pong (조선닷컴 블로그)

 

 

 

2012년 5월 1일 수락산 산행.

신록의 푸르름이 우거져가는 수락산산행을 마무리하고 하산길에 위치한

석림사-노강서원을 들려본다.

 

서기 1612년에 창건한 석림사는 340 년의 역사의절로 여느산 천년고찰보다는

오래되지않았지만은 수락산의 양지바른명당자리에위치한석림사는 절의규묘

는그리크지는 않지만은 경내를들려보니 고즈런한분의기가 묻어나는 분위기

이다.

 

석림사도 전각과 불상을 보수가 한창이다.

불상주위에는 아주작은 무수한 불상이 모여져서 올라간것이 아주특색이 있는듯

하다.

 

절의 중심이라고하는 대웅전의 현판을 한글로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지어져서 달아

놓은것도 여느절과는 다른 특색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석림사를 뒤로하고 한 200여미터 내려서면은 길 왼족으로 노강서원을 들려볼수가

있는데 작년에 들렸을적보다 새로이 단청도 단장을 하고 아주 깨긋하고 산득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전에는 없던 문화 해설사도 상주하고 있어서 노강서원의 유래를 들어볼수가 있는점

이 좋은모습으로 다가오는것같다.

 

 

 

경기도 전통사찰 제202호(2001.11. 2)
장암동 산 147번지

장암동 산 147번지 석림사는 장암동 수락산내에 위치하며 장암역에서 등산로를 따라 1㎞쯤 오르다 보면 이 절에 이른다.

 

석림사는 서기 1676년 조선현종(朝鮮顯宗) 12년 신해년에 석현 화상(釋賢和尙)과 그의 제자 치흠(致欽)이 석천동(현재 장암동)에 석림암(石林庵)을 창립하였고, 당시 이 암명은 통진현감(通津縣監)을 지낸바 있는 서계 박세당 선생

 

(西溪朴世堂先生)께서 지었으며 이는 현존하는 문집인「서계집(西溪集)」에 기록되어 있다.

서계 박세당 선생(西溪朴世堂先生)의 서계집(西溪集)에 기록된 석천동(石泉洞)은 석림사 도량의 큰 암반에 石泉洞이라 새겨져 약 325년의 긴 세월을 지켜오고 있다. 그후 서기 1676년 병진년 7월에 화주유담화상(化主裕淡和尙)이 삼소각(三笑閣)을 지었으며, 1698년 숙종 24년 무인년 2월에 대홍수로 인하여 사우(寺宇)가 유실된 것을 조가(朝家)에서 매월당(梅月堂)을 뫼시는 청절사(淸節祠)를 세우고 그 옆에 축원당(祝願堂)으로서 석림암(石林庵)을 복원 중수 하였다.

 

1745년 영조 21년 을축 7월에 역시 홍수로 유실된 것을 익명의 스님이 복원하고 석림사라 개칭하여 내려오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퇴락된 것을 1960년 상인비구니(相仁比丘尼)가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41호(1977.10.13)
장암동 산 146-1번지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이 서원은 조선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출을 죽음으로써 간언하였던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숙종 21년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한 서원이다.
본래는 풍계사였으나 숙종 23년에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노강이라고 사액받았다.

 

영조 30년(1754)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당시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아들로 숙중 3년(1677)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간 뒤 숙종 15년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숙종 20년에 모든 죄를 사면받고 그의 충절을 기려 이조판서로 벼슬을 올려받게 되었다. 지금 건물은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한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으로 맞배지붕의 사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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