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베이시의 베수비오화산은 이미그전부터 화산폭발의 징조를보였다지만은 사람들은 그사실을 무시하고
그대로 참변을 맞게된다.
타지않고 굳어버란이유는 화산폭발당시 가장먼저일어난 화산재 때문이였던것으로 추정된다고한다.
강진을 동반한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분출한 화산재가 무려 3미터정도가까이쌓였고 그때까지
살아남은사람들은 모두잠잠해지기를기다리며 피신하는사람들도있었다지만은 계속해서 내린비로
인해 분출한용암과 화산재가 굳어버려서 거리는 온통 가마솥같은 현산이 되면서 도시전체가
매몰된것이라고한다.
화산재가분출되기 시작하던시기에는 살아있는사람도있어고 물론 목격자도 있었다고한다.
AD 79년 폭발당시에 군인이자 박물학자였던 플리니는 미세노(나폴리서쪽)에 주둔해있었던
함대사령관으로서 폭발을관찰하고 그상황을 묘사한편지를 조카였던 타지투스에게보낸채
자신은 화산연기에 질식해 죽었다고한다.
이편지가발견되고 공개되면서 3미터가 넘는화산재에묻혀있던 폼베이는 1784년에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게된것이라고한다.
아레 이미지는 폼베이최후의연인들모습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운일이지요..
당시폼베이시에는인구 2만명정도가 살고있었다고한다.
번영하는로마제국의도시 폼베이는 화산재에위력에 손써볼수없는 상황에서
한순간에 당하고말았는데 한국도 백두산이 폭발의 징조가있느니하고 한동안
언론의이슈가 되더니 잠잠하다.
우리도 철저히 대비를해야되지않을까 생각한다..
폼베이를삼켜버렸던 베수비오화산 시에 거리상으로 멀지가않다.
신전으로 사용하던곳같습니다.하늘은푸르고 날씨는아주쾌청하고 뜨겁기만
한데 2000년전에 화산재에 이도시를묻혀버렸으니 자연의재해에는인간은
미약하기만합니다...
발굴해놓은 사람으로 전시하여놓았다.
오래전에 엣날 인데도 현재와비슷한 문물이 지금과다름이 없다고한다.
가지런이 전시하여논 이병들은 물병인것같습니다.폼베이가 지면으로고도가좀높은곳
에위치해서그런지 엣날에는물이귀하였던것만같습니다.
폼베이 대중목욕탕 욕조..
이어린이는 어찌이곳에벽화로그려놓았을까?
벽면을보니 보통단단하고두꺼운것이아닌것같다..
여기도대중목욕탕 욕조인것같다...
예전에도 현대와같이 구획정리가된것같이 정렬을다해놓고 건축을하였네요.
또한 폼베이에는수도물이 나왔다는것입니다.사진을 아직올리지못하였는데
도로바닥에 깔아놓은수도관을보고 매우놀랐습니다.어찌당시폼베이사람들은
머리가좋왔을까요?
폼베이사진 3편으로이여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