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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곤명 옥룡설산

2010년 6월 12일-17일 중국 곤명 옥룡설산 산행 1

by 북한산78s 2010.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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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2일 옥룡설산  (5100미터)산행

월드컵 첫경기가 달아오르는첫경기가 열리는날 중국운남성 여강에 위치한 옥룡설산산행을 다녀온다.  일년전부터 계획을 잡아서 한번도전을 해보자는 솔바람님에 제안에 혼쾌히 결정하고 산너머카페 임원진에 도움으로 옥룡설산을 다녀오게 된것이다.

산너머 임원진(솔바람.동원대사)들에 노고가 많았다.

6월 12일 저녁 10시에 인천공항에서 중국 동방항공 민항기에 탑승을 한다.

인천공항에서 중국 운남성 곤명국제공항까지는 3000킬로가 넘는다고 한다. 중국대륙은 넓긴넓은 땅인데 운남성 곤명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30여분이 걸리는 먼배행거린 인것이다.

인천공항에서 10시에떠나서 곤명국제공항에 도착하니 13일 새벽 2시30분이다.기내에서는 기내식을 한번 주는데 벌써 중국음식냄새가 진동을 한다.그러나 배고픔을 참지못하는 나는 남기지않고 다든다. 그런데 속이 별로 편하지가 않다. 큰일이다. 어디여행을 가면은 음식을무난히 잘먹고 소화를 시키여야 하는데 첫날부터 걱정이 앞선다.


곤명공항에 내리니 현지 조선족 가이드가 일행을 반긴다. 일정이 빠듯한관계로 일단근처호텔로 가서 한숨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옥룡설산이 위치한 여강시로 중국국내선을 타고서 이동을 한다고 한다. 호텔을 들어가서 잠깐 침대에누워서 뒤척거리니 얼마있자니 모닝콜벨이 울린다.


일층에서 아침식사를 서둘러 하고 곤명공항으로 이동을 한다. 곤명공항에서 여강시로가는 중국 동방항공여객기를 타고서 약 50여분을 가야 여강시에 도착을 한다고 하는데 아마 한국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를 가는 거리라고 가이드가 말을 한다. 곤명을 떠나서 여강 공항에 도착을 한다. 착륙을 하면서 공항을 보니 규묘는 볼품없는 작은공항인데 옆으로 공항을 확장을 하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여강공항에도착을 하니 이곳도 역시 우리일행과 옥룡설산을 같이행동을 할 조선족 가이드가 기다린다.


가이드는 조선족 젊은청년인데 아직 장가를 가지않은 32살 청년으로 성실하게 잘생긴청년이다. 공항에서 이제 옥룡설산을 가는긴여정이 시작된다. 공항에서 첫날트래킹으로 가야하는 중도객장을 가야하는데 약 도보길로 18킬로를 산행을 하여야 한다. 이제 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을 타고서 옥룡설산트래킹을 시작하는 입구에서 이른 점심을 들고서 산행을 시작 하게 된다고 한다. 공항에서 버스에 오르니 이곳 여강은 해발 고도가 2000미터가 넘는곳으로 하늘은높고 햇빛은 따갑기만 하다.월래 중국운남성에서도 아주 깊은산골로 예전에는 아무도 찿지않는 절해 산골이라고 하는데 요즈음들어서 옥룡설산을 개발하여서 유동인구가 많아서 관광으로 개발이 한창이라고 한다. 버스를타고서 주위를 돌와봐도 아직도 그옛날에 어려운중국인들 삶에 정취가 길옆에 스쳐가면서 보인다. 그래도 요즈음들어서 많은 발전을 해서 전기도 다들어오고 태앙열로 하는 보일러가 집집 마다 설치된것을 볼수가있다.문명에이기가 깊은 산속오지에는 들어온것이다. 버스는어느덧 여강을 떠나서 옥룡설산을 바라다보이는 산협곡에 일행을 내려준다. 협곡도로옆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드는데 워낙 산골오지인지라 한국인식당은 가이드말인즉 없고 여강에서 전체트래킹 산행중에는중국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식사에 어려움에 대비해서 한국 고추장과 김을 준비해가지고 왔지많은 어떻게 잘견디려는지 모르겠다. 식당에서 중국음식으로 점심을 들고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옥룡설산 트래킹에 들어선다. 반은기대감 과 신비스러움 걱정반으로 오늘 일행이 가야할길은 18킬로 정도로 옥룡설산에위치해서 일행이오늘밤에 묵을 중도객장에를 저녁까지 들어가야 한다.  이제 산해ㅔ은 시작되였는데 우리뒤를 조랑말을 데리고 중국현지인들이 뒤를 같이 따라온다. 가이드말인즉 우리가 트래킹 일행중에 힘이들거나 낙오가 되는사람을 말에 태워주고서 돈을 벌기위해서 말을 데리고 쫓아오는것이란다.

오늘은 여기까지 글을 써봅니다.다음글은 계속 이여서 적어보겠습니다.이번 옥룡설산산행을 하면서 너무힘든산행을 하였기에 메모를 하지못하여서 같다와서 글을 쓰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이 나는대로 한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운남성에 대하여...

곤명(昆明)

 

베트남과 국경을 맞닿은 곤명은 중국 남단 운남성의 성도이며 해발 1,900m 의 운귀고원(雲貴高原)에 위치해 있다. 사계절 내내 꽃이 끊이지 않고 피어 꽃의 도시라는 별칭과 사시사철 온난한 기후 때문에 봄의 도시(春城)라고도 불린다. 여름에는 기온이 20℃를 넘지 않고 겨울에는 8℃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이 도시에는 한족은 물론 회족(回族), 백족(白族), 묘족(苗族), 합니족(合尼族) 등의 20여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 고 있으며 전체 인구는 약 2백만 명 정도 된다. 곤명이라는 이름은 고대 이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던 민족의 이름이며 사마천의『사기(史記)』서남이전 에 나온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곤명은 산의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유서깊은 사 원과 건축물 등이 있으며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호수인 면적 330㎢의 전 지호수를 끼 있다. 또한 인근에 있는 대리(大理), 여강(麗江), 석림(石 林), 서쌍판납(西雙版納) 등의 관광지로 가는 중심지로 북경과 서안에 이어 3대 관광지로 꼽히는 도시이다.도시 인구는 약 1백93만 정도이다.

운남성(雲南城)에는 중국의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볼거리가 있다.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산봉우리,코끼리와 원숭이를 볼 수 있는 열대 정글,한(한), 회(회), 이(이),묘(묘),합리(합리)등 25개의 소수빈족의 다양한 생활상을 볼 수 있다.이 때문에 어떤이들은 운남을 가리켜 살아있는 사회발전역사라고도 한다. 만약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소수민족들의 생활을 볼 수 있는 오지를 탐방하고 싶다거나 한다면 운남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역사

곤명은 약 2,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279년 초(楚)나라의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배한 뒤 한(한)나라를 거쳐 원대(원대)에 곤명현이 설치 되었다. 이 곤명(昆明)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살고 있던 부족의 이름이다.

곤명은 한때 프랑스의 조차지로서 가톨릭 대성당,수녀원,프랑스인들이 출입하는 클럽등이 있었다. 하노이에서 시작되는 협괘열차는 1895년~1904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지끔까지도 운행이 되고 있다. 프랑스가 원한 것은 이 지방의 주석,텅스텐,아편 등이었다. 이 지방은 또 목재, 고무 쌀 등이 풍부하다. 곤명은 태평양 전쟁에는 토호들의 수중에 있었으며 일본의 동남아 침략의 교두보로도 이용 되었다.

 

기후

곤명(昆明)은 해발 1,895m의 고도와 아열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사시사철 봄처럼 따뜻하지만 지난91년에는 눈이 조금오기도 하였다. 7월 중 최고 온도는 29도이며 1월 최저 온도는 영하 1도이다. 대개는 5월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며 이 기간의 강수량은 약 1,500m 정도이다. 동백꽃이 만발한 2월이 곤명을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중국 서남쪽 변방에 위치하며 베트남,미안마,라오스 삼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은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 오색찬란한 화려한 성으로 각인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이곳을 방문하게되면 오히려 이곳의 순수하면서 소박한 매력에 더욱 이끌리게 된다.

운남성의 서북쪽은 드높은 기세의 험준한 협곡이 펼쳐져 있어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전심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우뚯 솟은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 옥룡설산,합파설산,매리설산 등은 그 기묘하면서 험준한 봉우리로 국내외 빙산 등반가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또한, 서남쪽에 있는 서쌍판납의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한 기세의 풍경은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의 모습을 빗댄듯 하며, 동남쪽의 산간 평지에는 합니족이 대대로 경작해온 계단식 밭이 층층이 겹쳐져 있는데, 매년 9월이면 노란색의 유채꽃이 산과 밭을 가득채워 마치 그 모습이 땅과 하늘을 황금색으로 가득 채운듯 하다.

이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땅에는 백족,합니족,태족,납시족 등 25개 소수민족들이 운남성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납시족의 동파문화,대리의 백족문화, 태족의 패엽문화 등 그들의 다양한 신화,가무,그림, 음악은 운남의 독특한 민속문화를 만들어냈다.

또, 운남성은 인류 발원지 중의 하나로서 원모현이라는 곳에서는 약 170만년전 원시인 석화도 발견되었다. 성도는 곤명시로서 '춘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여 언제나 꽃이 만발하고 산이 푸르며, 이런 자연환경에 어울려 수많은 명승고적이 자리하고 있는 중국 최고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 곤명에 대하여...
중국 남서부 운남성(云南省)의 성도로 운남성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인 동시에 2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와 여행의 도시이다. 지리적으로 운귀(云貴)고원 중부에 위치해 있어서 시내 중심부의 높이가 해발 1,891m이다.

기후가 온화하여 여름에는 혹서가 없고, 겨울에도 혹한이 없다. 사계절이 봄과 같고, 4계절 끊임없이 꽃이 핀다고 하여 사람들은 "춘성(春城)"이라고 칭한다. 일년 중 언제라도 곤명을 여행하기에는 좋은 시기이다.

곤명에는 한족,이족,백족,태족,합니족등 여러 소수민족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으며, 명승고적이 매우 많아서 도시 전체에 관광지구가 분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석림과 전지 풍경구를 중심으로 안녕온천리조트-석림 풍경구 구간을 따라 점차 관광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천하제일기경'이라 불리는 석림에는 "아사마"라는 아름다운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곤명의 전지는 중국의 6대 담수호 중 하나로 고원명주(高原明珠)라 칭해지기도 한다. 또한, 전지에서 가까운 곳에 각 소수민족의 정수를 농축시킨 운남 민족촌이 있고,그 밖에도 대관루,서산공원 등은 곤명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

곤명의 토질은 철이 많이 섞여 있어서 빨간색의 적토질이며, 담배나 차와 같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조건이다. 운남의 보이차와 구감차가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특히 구감차는 처음에 쓴맛을 내다가 뒤에 단맛을 내는 특이함으로 유명하다.



■ "곤명"의 유래
곤명은 고대에 이 지역에 있던 부족의 명칭으로 이족(彝族)의 고대 언어의 음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1274년 원대에 곤명현이 생기면서 운남성의 성도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1919년 중국 지역을 공식적으로 분할 정리
하면서 운남시 정부가 생기고 1922년 정식으로 곤명시라 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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