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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이모저모

[스크랩] 구하기도 보기도 힘든 사진들 입니다

by 북한산78s 200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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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도 보기도 힘든 사진들 입니다.
중공군 종군 사진기자가 찍은 것으로 추측 됩니다.



함께 일하는 옛 전쟁터에서 다시 봄날이 왔다.



짚차를 타고 도주하던 미군 병사들
(차 양쪽의 손을 든 사람들)을 사로잡은 중공군 병사들.



전투가 없는 날 중공군 병사들이 민가 아낙네의 
봄 밭갈이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중국 인민지원군의 시각으로 기록한 
한국전쟁의 사진집이 나왔다. 
<영광스런 중국 인민지원군>
(중국 해방군화보사, 1959년)의
사진과 사진설명을 따서 펴낸 [그들이 본 한국전쟁]
(눈빛출판사)이 그것.원저는 중국 인민군이 북한에서 
완전히 철수한 뒤,그들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홍보를 위한 시각이 다분하지만 압록강 도하,
그들에게 잡힌 미군포로, 인해전술때 불어제낀 날라리,
폭격을 피하기 위한 물밑다리 등 우리 쪽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전쟁의 나머지 반쪽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전쟁 끝 무렵 후방에서 북한의 전후 
복구사업에 뛰어들어 활동한 사실은 이채롭다.



북한 위문단이 지원군 시공부대에 와서 화려한 공연을 펼쳤다.



전쟁이 끝난 뒤 재건사업에 투입된 중국군 병사들이
북한 주민들과 함께 포탄 구덩이들을 메우고있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장면.



북한 주민들이 포화를 무릅쓰고
지원군을 위해 밥과 물을 나르고 있다.



1951년초 눈 덮힌 강원도 횡성지역에서
진군 나팔소리에 맞춰 돌진하는 중국군 병사들.



김일성이 직접 중공군 1차 귀국 부대를 송별하고 있다.



한 노인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갓을
지원군에게 작별 선물로 주고 있다.



1951년초 서울에 입성한 중공군과 북한군 병사들이
중앙청 앞에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압록강변의 국경도시 신의주에서 열차로 
압록강 철교를 건너는 중공군 귀국장병들을
환송하는 북한 주민들.



북한의 한 노인이 지원군에게 길 안내를 하고 있다.



    군대와 함께 출정한 중국 민간인 수송대의 우마차 행렬이 
    눈밭 속에서 전쟁물자를 실어나르고 있다.


 




1945년 11월 강원도 삼척에서 평창으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는 두 노인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도중, 잠시 멈추어 있는 경부선 열차. 화물차로 보이는 열차에는 승객들로 빼곡히 차 있다. 
담소를 나누고 있는 역무원들의 모습


1945 강원도 평창 서쪽, 한 노인이 곰방대를 문채 응시하고 있다.


1945. 11월 부산에서
 
1945년 11월 부산
 

1946년 1월, 미 연합군을 따라 남하하는 남루한 모습의 노인. 당시 모든 한국인들은 한국이
통일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지만 뉴스에는 38선이 고착될 것 같다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1945년 부산발 서울행 열차에서.
 

1945년 10월 서울 한강철교
 

October 1945, five miles south of the main road between Inchon and Seoul.
 

Han River near Seoul in November 1945.
 

Somewhere east of Seoul we saw these rice fields in December 1945.
 

Seoul, Korea January  1946.
 

We were highly impressed with the beauty of the Korean railway stations. We saw this one
somewhere southeastof Seoul in December, 1945
 

October 1945 in Seoul, Korea
 

November or December 1945 in downtown Seoul. I don't recall the reason for the parade.
Perhaps Lostseouls will translate the symbols.
 

Maybe one of my Korean cyber-friends could translate. All the data I have is that it was near where
we lived. As I recall after 61 years, our quarters were in the large building in the bckground.
 

Ceremony welcoming Syngman Rhee on his return to Korea in October 1945.
 

At the welcome for Syngman Rhee in October 1945. 소녀들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하지중장
 

Red light district in Seoul, Korea was off limits to GI's in the fall of 1945
 

Seoul, Korea in December 1945. As I recall, this shows the only source of heat for many of the
small shops.
 

Seoul, Korea October 1945
 

1945년 가을, 서울의 남산에서 만난 한 소녀(소녀가 업고있는 아기는 그의 여동생으로 보인다)
뒤에 보이는 것은 당시 남산에 있던 일본 신사의 모습
 

1945년 서울거리 곳곳에 미 연합군의 서울 입성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1945년 11월 서울의 Honto Hotel (지금의 조선호텔로 추측)옥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시내. 멀리 명동성당이 보인다.
 

 

 

1965년  서울 반도호텔(Bando Hotel). 아마 위 사진들은 이 호텔의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 아닌가 한다.
반도호텔은 1936년 일제강점기 경성 을지로1가에 일본인의 투자로 세워졌다. 서양식 건물로 조선호텔과는
건축양식면에서 대조를 이루었다.
반도호텔 : 일본인 노구찌(野口)에 의해서 미국 버팔로 스타틀러(Buffalo Statler)호텔의 경영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1936년 세워진 8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객실 111개를 보유한 당시 시설규모로 한국 최대의 것이었다.
 

1945년 11월 부산
 

1945년 서울 근교 시골마을의 모습


북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추측하기론 1945년 훨씬 이전,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



 




 



 




 



 




 



 




 

 

이 자료들은 1960년대와 70년초의 것으로 당시 산골과 도시의 풍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살기가 궁핍했던 시절, 산골의 너와집,물레방아,코굴하며  당시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생필품과 모습들은 현대화의 물결속에 밀려 역사속으로 뭍혀버리고

이제는 우리들의 아련한 추억속에만 남아 후대에는 영원히 잊어지겠지요..

 너와집=보춤나무 겁질을 벗겨서 지은 집입니다,70년초까지도 산골에 간혹있었습니다

 물레방아-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물레가 돌아가면 곡식들을 찧었습니다

 물을 한곳으로 모아 물레방아간 물레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코굴=호롱불마져 없던시절 방구석에 소나무 관솔을 이용하여 불도 밝히고 난방도하였습니다

 재래식 부억= 왼쪽은 고목나무로 만든 쌀통

 배틀=삼베옷을 짜기위해 낮에는 들에서 길쌈을 메고 밤이면 첫닭이 울때까지

베틀에 매달려 고생하시던 우리네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지게=가을 추수철이면 농기구가 없어 지게로 하루 종일 저셔 나르시고

밤새워 끙끙 앓으시던 아버님들이 셨지요

 한겨울 얼음을깨고 시린손 며 빨래하시던 어머님들이십니다

 직장에서는 새마을 사업에 압장서고....

 재래시장 모습입니다

 60~70년대에는 시골에서 농사짖는 처녀 농군들도 참 았습니다

 거름도 지게로 저나르고....

 어린이들 헤어 타일은 모두가 빡빡 머리였습니다

 입학식=생각들 나시지요?

어머니,할머니들 손잡고 손수건 가슴에 달고 코흘리게 입학식 하던 날을.....

 호기심반 긴장감반 입학식 대기중입니다

 할머니랑 입학식 온것같습니다

 저당시는 왜그리도 추웠던지 꼬맹이들 하나같이 꽁꽁 싸동여매고 입학식하러 왔습니다

 재래식 대나무스키=순수 국산 스키입니다

 설피=허리까지 쌓인 눈길을 걷는데 신는 신발입니다

 이때에도 환경에 많은 관심이 었지요

 단말머리,하얀웃도리, 검은 통치마 추억의 여고생 교복입니다

 얼음이 얼면 썰매를 타고....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던시절 해변가 아이들은 조개겁질과 소꿉 동무하며.....

 많은 학교에서 부업으로 기르는 토끼도 많았습니다

팔아서 학생들 공책이랑 학용품사는데 많은 일조를 하였지요

 철새들이 오는 겨울철에는 학생들이 천연동물 보호 지킴이도 많이 하였지요

 단오절 그네뛰기=누가 누가 높이뛰나 청포물에 머리감고 동네마다 잔치를 벌이던 우리네 어머님들의

그네 뛰는 모습입니다

 그네 발판에 명주실을 달아 높이 올라간 사람순으로 등수를 매겼지요.

 단체 음악 연주 시간입니다

 단체로 줄넘기= "두손을 잡고 뛰어 보자아~ 팔알짝 머리가 하늘까지~~동요가 생각납니다

 

농 어촌과 대조적으로 도시에는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출처 : 산-너머
글쓴이 : 솔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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