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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초암산 철쭉 1

by 북한산78s 2007.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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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빛] 초암산 철쭉
앞과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십리 철쭉 능선’
최초 지상 공개되는 철쭉 명산…수암리~정상~철쭉봉~무남이재 답사

그것이 철쭉이든 무엇이든 구경거리가 제 몫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찾아가 보기가 편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관광명소는 제철을 만나면 지나치게 북새통이다. 5월5일 다향제의 한 행사로 철쭉제가 열린 보성 일림산이 그러했다. 2km 저 밖까지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는 속속 산기슭으로 밀려들었다. 장흥군쪽에서도 5월5~6일 제암산 철쭉제를 지내 제암산~일림산 능선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반면, 같은 보성땅임에도 초암산(草庵山ㆍ576m)은 여유로웠다. 물론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여러 대 서 있기는 했지만, 일림산이나 제암산쪽에 비하면 한갓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탐방객이 적었다. 적어도 내년까지 초암산은 이런 호조건을 유지할 것이다.

초암산은 최근 들어서야 알려지기 시작한 보성의 철쭉 명산이다. 하지만 이 산은 오래 전부터 철쭉 산이었다. 초암산 아래 겸백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등산꾼 송교영씨(71ㆍ초암산악회 회장)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 이곳 초암산정으로 봄소풍을 다녔고, 그때만도 엄청나게 철쭉밭이 넓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암산이 여태껏 무명이었다는 사실은 의외다. 조금만 경치가 괜찮다 싶으면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알려지는 요즈음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아마도 인근에 자자한 명성의 철쭉 명산 제암산과 일림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사람들은 철쭉제를 여는 제암산과 일림산만을 찾았고, 초암산은 존재 자체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산의 크기와 철쭉밭의 규모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일림산~제암산 능선이 우위라는 이유도 클 것이다. 


▲ 정상부 암봉에 서서 내려다본 철쭉밭과 등산객들. 이미 널리 알려진 보성의 철쭉 명산 일림산은 철쭉 만개철엔 북새통이지만 초암산은 아직 한적하다.

내년까지는 인파에 시달리지 않는 탐승 가능

일림산이 바다가 지척이어서 푸른 바닷빛과 어울린 철쭉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초암산은 철쭉밭의 정수만을 똑 따서 즐기고 내려올 수도 있다는 간편함이 두드러진다. 북쪽 임도로 하여 철쭉밭 바로 밑까지 차량으로 올라간 다음 정상 근처의 철쭉밭 구경 후 되내려오는, 등산이라기보다는 거의 관광에 가까운 방식의 탐승이 가능하다.

산 남쪽 수남리계곡으로 목포-광양간 고속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원한다면 호남정맥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광대코재~주월산~방장산~오도재 능선을 포함한 원점회귀형의 사뭇 뻐근한 당일산행을 선택할 수도 있다. 겸백면은 이 원점회귀형 등산로의 출발지 수암리에다 널찍한 주차장도 닦아놓았다.

더불어 초암산 철쭉제도 작년부터 시작했다. 일림산과 더불어 초암산 철쭉제도 지내며 보성군은 아예 ‘녹차와 철쭉이 어우러진 보성’으로 홍보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몇 해 지나지 않아 초암산 역시 일림산처럼 철쭉 만개시기엔 접근조차 힘든 북새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년 봄 철쭉 산행만큼은 초암산으로 미리 일정을 잡아둘 일이다.

초암산의 과거 이름은 금화산(金華山)이었으며, 옛 금화사(金華寺) 터가 있다고 한다. 초암산이란 이름도 초암(草庵)이란 암자와 관련이 깊지 않을까 싶지만, 보성문화원에도 특별한 자료가 없다고 한다. ‘백제 때 세워진 절 금화사는 한때 대찰이었으나 절에 워낙 빈대가 심하게 끓어 태워버렸다’는 옛 노인들의 구전을 보성군지는 전하고 있다. 지금은 작은 암자조차도 없고, 다만 한 기 남아 있는 마애석불이 과거 이 산에도 절이 존재했음을 전하고 있다.

이 산의 남서 사면에는 베틀굴이란 천연굴이 있다. 보성군지 기록에 의하면 굴의 길이가 20m, 폭 1m, 높이 2m라고 하나 현지 주민들 말로는 과거 공비토벌 때 폭파되어 지금은 굴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겸백면은 조만간 이 굴을 거쳐 정상 가는 길을 정비할 예정이다. 


▲ (좌) 신록과 철쭉이 모자이크된 초암산 능선. 거의 평지 같은 완경사 능선이 정상 동쪽에 펼쳐져 있고, 그 모두가 철쭉밭이다. (우) 초암산 남동사면의 철쭉밭 길을 걷고 있는 취재진. 어제의 비바람으로 꽃잎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붉은 기운이 여전하다.

취재는 원점회귀형 산행이 가능한 수남리 주차장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광대코재까지 주욱 철쭉 능선을 따라 걸은 뒤 무남이재에서 계곡을 따르며 풍치가 어떤지 보기로 했다. 

평일인 5월4일, 수남리 계곡 북사면에 닦아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시피 하다. 주차장 오른쪽 위의 화장실 뒤로 커다란 등산로 안내판이 뵌다. 그 왼쪽 옆의 족적을 따라 올랐다. 이 정도 시설을 해두었으면 등산로 정비도 잘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는 당혹감으로 곧 바뀌었다. 밤나무숲을 지나며 발자국이 희미해진 것이다. 되내려오기도 하며 사방으로 뒤져보았지만 손을 봐둔 것 같은 길이 뵈질 않는다. 나중에 하산한 뒤에야 겸백면사무소에서 이곳에서 정상 쪽으로는 아직 등산로가 뚜렷이 개설돼 있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등산로 안내판에조차 ‘수남~정상 2.1km’라고 뚜렷하게 써둔 것으로 보아서는 의외였다.

희미한 족적을 따라 500m 남짓 북동쪽으로 비스듬히 오르자 뚜렷한 길을 만난다. 이 길은 사곡리에서 시작된 오랜 등산로다. 걷는 편리함만을 따지면 사곡리쪽 길이 낫지만 사곡리쪽은 주차시설이 없다.


▲ 저 뒤의 기암봉이 선 곳이 정상으로, 정상을 빙 둘러 모두 철쭉밭을 이루고 있다.

정수리엔 추상화한 山자 형상의 기암봉

신록을 완상하며 천천히 올랐으나 때 이른 무더위에 걸음이 처진다. 줄곧 오르막이긴 하되 완경사이고, 간혹 앞이 훤히 트이는 조망처가 있어 설혹 저 위에 철쭉이 없다 해도 별로 섭섭치 않았을 것이다. 시간 반 남짓 소걸음으로 걸어 정상이 바라뵈는 곳으로 올라섰다. 왼쪽 옆으로 또한 뚜렷한 등산로가 나서는데, 이것은 사곡리에서 계곡으로 하여 정상 오르는 길이다. 북사면으로 임도가 나기 전엔 이 길이 초암산정을 오르는 가장 쉽고도 빠른 길이었다고 한다.
남쪽으로 이렇게 200m쯤 떨어져서 바라보는 초암산정 일대는, 비록 정수리에 삐죽한 암봉을 얹었을 망정 푸근하게 품을 벌린 모양새다. 남향이라 따듯하고 한 가닥 산릉을 날갯죽지처럼 펼쳐 북새풍마저 막고 있는 초암산정 남사면엔 얼핏 보기에도 이미 10기는 넘을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자손들은 이곳에 조상을 모시고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

정상까지 휘익 치달아오르기가 아까워, 완보로 이모저모 뜯어보며 걸었다. 철쭉은 막 만개시기를 지나 엊저녁의 비바람으로 사뭇 많은 꽃송이가 떨어졌으나 전체적으로는 붉은 기운이 완연하다. 밝은 봄햇살이 내리쬐며 붉은 철쭉밭은 무르녹고 있다.

산정에는 묏 산(山) 자를 추상화한 것 같은 형상의 한 무리 바윗덩이들이 얹혔다. 山자의 오른쪽 획을 길게 옆으로 잡아빼거나, 혹은 가운데 획을 과장되이 부풀린 듯한 추상적 서체로 서 있다. 그 암봉 중 하나에 올랐다.


▲ 초암산 동록에 펼쳐진 철쭉화원. 눈높이로 줄곧 따라오는 초암산 철쭉.

철쭉밭은 이 정상 암봉 근처에서부터 북동릉을 따라 펼쳐졌는데, 어디가 끝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붉은 기운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경사와 넓이가 적당하고, 저 뒤로는 첩첩한 산릉이 눈높이보다 약간 아래로 펼쳐졌다. 좁고 길기만 하거나, 펑퍼짐하게 넓기만 한 그런 평범한 꽃밭과는 다른 뛰어난 구도를 보이는 철쭉밭이다.

정상 바윗덩이들은 큼직하긴 한데 윗면이 넓적한 것은 없어, 앉아서 쉴만한 곳은 못되었다. 다만 정상부 바로 옆에 널찍한 헬리포트가 있어 사람들은 거기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정상 남쪽 바로 아래에서 북동쪽으로 넓고 뚜렷하게 이어진 길은 북사면의 임도로 이어지는 길이다. 철쭉 능선을 따르려면 그보다 30m쯤 더 나아간 지점의 삼거리에서 서쪽 능선길로 가야 한다.

여기 서쪽으로 빠져나와 바라보는 정상쪽 풍경은 정상 바윗덩이들로 멋진 조형미를 이루었다. 이모저모로 초암산정 부근의 철쭉 탐승을 두루 마친 뒤 등산로 안내판에 철쭉봉으로 표기된 봉을 향했다. 이름마저 철쭉봉이라면 그 주변 철쭉 풍치가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하는 기대는 그러나 그 철쭉봉에 다다르기도 전 지루함으로 바뀌고 만다. 앞과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쭉화원에 우리는 그만 물려버린 것이다. 역광을 받아 빛나는 신록의 이파리들이 외려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다.


북쪽 임도 방향으로 여러 가닥 갈래길 나 있어

철쭉 능선을 짚어 나아가는 동안 종종 북으로 뚜렷한 갈림길들이 나섰다. 남쪽으로도 두어 가닥 샛길이 있기는 했지만 북쪽으로 난 것이 한결 많다. 북쪽 임도로 차를 몰고 와 철쭉능선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초암능선 북쪽 임도는 비록 비포장길이지만 승용차도 아무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을 만큼 노면 정비가 잘 돼 있고, 등산로 기점 부근은 다소 넓어 승용차 몇 대쯤은 충분히 세워둘 만하다.

철쭉 구경하라고 벤치도 몇 개 놓아둔 쉼터, 밤골재 삼거리 지나 밤골재로 올랐다. 밤골재란 안내판이 섰기는 했지만 헬리포트가 닦여 있는 이곳은 재가 아닌 해발 605m의 봉우리다. 등산로 입구의 안내판에 철쭉봉이라 표기한 그 봉우리다. 정작 이 철쭉봉 주변에는 철쭉이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신록의 능선 위에 넉넉한 양으로 흩뿌려둔 듯 저 멀리까지 붉그스레하게 철쭉의 주단이 펼쳐진 원경이 이곳에선 으뜸이다. 이렇게 보는 맛이 특히 좋았기에 철쭉봉이라 부르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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