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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인천 수도국산 박물관 ..2

by 북한산78s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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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국산 달동네의 역사..

달동네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 유래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중반 사이에 도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들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노후 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달동네의 어제와 오늘

달동네와 같은 ‘도시 저소득층의 집단 밀집 주거지’의 시초는 일제 강점기 ‘토막민촌’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막민촌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들이

주인 없는 산비탈이나 개천가에 허가 받지 않고 지은 것이다.
달동네도 그 중 한 형태인데, 일제의 식민정책, 8.15해방, 한국전쟁(6.25) 그리고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집중되고 주택이 부족하게 되자 빈민계층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동네 주민들은 국가 소유의 땅을 무단 점거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주

철거되거나 집단 이주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도시 내에서 일자리를 얻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따라서 쫓겨나면 다시 도시의 다른 곳에서 무허가 집을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였다.

달동네 살림집

달동네는 산비탈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집들이 자리하면서 이루어졌다.

 좁고 비탈진 곳에 집을 짓다 보니 공간의 여유가 없는 반면 많은 기능을 담게 되었다.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 하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해 냈다. 따라서 전면적인

개축보다 낡고 오래된 부분을 개보수하거나 자투리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평면은 지형에 따라 ㅡ자, ㄱ자형을 기본으로 하는데, 증축과 개축을 하면서 조금씩 바뀐다.

수도국산 달동네 가옥 형식은 1960년대 후반까지는 목조 흙벽에 초가지붕 혹은 루핑(유지)지붕이

일반적이었지만 1970년대 전반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지붕은 기와지붕이나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다.

(달동네 박물관 홈피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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