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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사진 정보

사진기의 역사 1

by 북한산78s 201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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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의 역사


사진기의 원리와 관련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방 안을 어둡게 한 뒤 한쪽 벽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비록 거꾸로 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방 안의 벽면에 비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린 이 방법은 중세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화가들에 의해 밑그림의 윤곽을 그리는 도구로 발전했다. 네모난 상자의 한쪽 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놓고, 그 면의 반대 면에는 종이를 붙여, 바늘구멍이 향하고 있는 쪽 영상이 상자 속으로 들어와 종이에 비치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후 1550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르다노는 구멍 쪽에 볼록렌즈를 대면 종이에 비치는 영상이 훨씬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볼록렌즈가 빛을 모아서 종이에 초점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또, 이후 유럽에선 질산은(窒酸銀)이 빛을 받으면 검게 변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질산은의 변색은 그 이전에도 관찰된 것이나, 대부분 시간이 오래가면 변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빛을 포착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즉각 질산은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그 대표 주자가 프랑스의 인쇄업자인 니에프스였다. 질산은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빛이 닿지 않은 질산은도 결국에는 검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질산은 대신 아스팔트의 일종인 ‘비투맨’이라는 물질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는 비투맨을 금속판에 바른 뒤 카메라 옵스큐라의 벽면에 세워 인류 사상 최초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비투맨이 빛에 반응하는 시간이 매우 느려서 사진 한 장을 촬영하는 데 무려 8시간이나 걸리고 형체도 불분명했다. 이에 니에프스의 공동 연구자였던 다게르는 1839년 요오드 증기를 쐰 은판(銀板)에 수은 증기를 다시 쐬면 현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 ‘다게레오타이프’라는 최초의 사진기를 발명했다.


그는 요오드 증기를 쐰 은판을 이용해 카메라 옵스큐라로 분명히 촬영을 했는데도 영상이 나타나지 않아 은판을 서랍 안에 처박아 두었는데, 며칠 후에 다시 보니 영상이 또렷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그 즉시 서랍 속을 뒤졌고, 여기에서 마개가 열린 수은병을 찾아냈다. 은판이 서랍 속에서 수은 증기의 영향을 받아 현상되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라이카 M4.

>>코닥, 전성시대 구가
다게르의 발표보다 불과 석 주 늦게 영국의 탈보트는 질산은을 바른 종이로 촬영을 한 뒤 이를 소금물에 적시면 ‘네거티브 영상’(흑백이 서로 뒤바뀐 상태로, 흑백 필름의 상태와 똑같음)을 얻을 수 있고, 이를 다시 질산은 종이에 맞붙여 강한 빛을 쐬면 ‘포지티브 영상’(흑백과 백색이 제대로 된 상태)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방식은 선명치 못한 단점 때문에 다게르가 만든 ‘다게레오타이프’보다는 인기가 떨어졌지만, 다게레오타이프는 단 한 장의 사진밖에 만들 수 없는 반면 그의 방식은 네거티브 영상으로 된 원판 사진 한 장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았다. 바로 이 네거티브 영상이 오늘날의 필름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후 오늘날의 비닐과 유사한 셀룰로이드가 만들어지면서 사진의 필름에는 셀룰로이드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아울러 다게르와 탈보트의 장단점을 보완한 각종 개발품이 뒤를 이었다.


▲ 니콘의 첫 SLR 니콘F.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발명 중의 하나가 1888년 미국의 한 은행원이었던 이스트먼이 만든 제품이었다. 그는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소형화시키면서 그 안에 100장의 두루마리식 필름을 내장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사진 한 장을 찍고 곧바로 사진관으로 달려가야 했던 기존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했고, 사진기의 가격은 물론 현상하는 데 필요한 비용까지 대폭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그는 “셔터만 누르면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소비자가 사진을 다 찍은 뒤 카메라를 회사에 보내면 회사에서 필름을 꺼내 현상한 뒤 다시 새 필름을 채워 사진과 함께 되돌려 주는 영업 방법을 채택, 사진이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회사가 바로 최근까지 세계 최대의 사진기업체였던 코닥사다.


이스트먼의 사진기는 에디슨에 의해 영화용 영사기의 발명으로 이어졌고, 1912년 미국의 영화업자인 조지 스미스는 필름 크기를 오늘날의 필름 규격이 된 35mm로 소형화시켰다. 이후 화학·광학·전자 기술의 발달은 사진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빛의 색깔에 선별적으로 작용하는 감광제의 개발은 컬러 사진으로 이어졌으며, 35mm 리플렉스 카메라, 폴라로이드의 즉석 카메라, 적외선을 발사해 거리를 측정하는 일본 캐논사의 자동초점(Auto-Focus) 카메라의 개발도 뒤를 이었다.


▲ 캐논 EOS-1 MarkⅣ

>>1980년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
카메라는 크게 세 번에 걸쳐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먼저 보급형 필름 카메라의 등장이다.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업체는 기존 70㎜ 거치식 카메라를 탈피해 35㎜ 휴대형 카메라를 개발하면서 필름 카메라 시장을 열었다. 1925년 독일 라이카가 첫 35㎜ 카메라인 ‘라이카 A’를 양산하면서 크기·화질 요구 모두를 만족하면서 필름 카메라는 1926년 1,600대에서 1930년 3만8,000대까지 급증했다. 카메라 대명사로 불리는 라이카 시대의 개막이다.


이어 1950년대 ‘RF(Range Finder)’ 방식에서 ‘렌즈 교환식(SLR:Single Lens Reflex)’으로 넘어가면서 카메라 시장은 일대 변혁을 거쳤다. 당시만 해도 카메라는 피사체까지 거리계로 측정해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렌즈를 갈아 끼우는 SLR 제품은 RF 한계를 뛰어넘었다. 렌즈로 들어온 빛을 거울을 통해 직접 뷰파인더에 전달해 보이는 그대로 촬영할 수 있다는 면에서 혁신적인 방식으로 평가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기술력을 축적한 니콘·캐논 등 일본 업체가 1950년대 후반 SLR 카메라를 출시하면서 카메라 시장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맘때다. 라이카도 뒤이어 1965년부터 SLR 방식의 ‘라이카 플렉스’를 출시했으나 이미 경쟁에 밀려난 상황이었다.


▲ 소니 마비카.

마지막 세대교체는 1980년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다. 디지털 카메라 등장은 필름을 공통분모로 했던 카메라 시장의 기존 패러다임을 ‘180도’로 바꿔 놓았다. 1975년 코닥 엔지니어였던 스티븐 세손이 세계 최초의 디카를 개발해 디지털 시대를 열었다. 당시 이 제품은 4㎏ 무게에 1만 화소의 이미지센서를 장착했으며 이미지 한 장을 카세트테이프에 저장하는 데 20초 이상이 필요했다.


이어 1981년에는 소니가 최초의 상용화 디카 ‘마비카’를 출시하면서 보급에 탄력을 받았다. 그 이후 디카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2010년 8월 24일, 도쿄에 본거지를 둔 캐논 (Canon) 사는 약 1억2,000만 화소급의 APS-H 규격1)의 CMOS 이미지센서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음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언론 발표회를 가졌다.


 / 글 유창우 기자

테마특집ㅣ디지털카메라] 1.디카의 탄생_사진기의 역사

1억2,000만 화소급의 CMOS 이미지센서까지 나왔다

디카의 발달과 변천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이제 아마추어와 프로사진가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다. 이는 디지털카메라의 비약적 발달과 대중화로 인해 생긴 현상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점은 보급형 디카의 초창기 모델인 캐논 G1(출시가 1,100달러)이 출시된 2000년 9월로 보는 것이 많은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10년을 조금 넘긴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이 변한 것이다. 일상생활 속 깊게 자리한 디카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자.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디카의 상품화는 1981년 소니에 의해 제작된 아날로그 방식의 스틸 비디오카메라에서 비롯되었다. 마비카(Magnetic Video Camera)라는 상표로 선보인 이 스틸 비디오 카메라는 필름 대신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해 영상을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비디오테이프 레코더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초기의 디카는 이렇듯 아날로그 방식으로 시작했다. 마비카는 뷰파인더가 없는 대신에 후면에 있는 액정 화면을 보며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큰 파장을 몰고 왔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카메라의 가격은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날로그 방식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된 것은 1990년 다이캠(Dycam)의 출시부터다. 흑백으로 이미지를 캡쳐하는 이 디카의 해상도는 아주 낮았으나 이미지 캡쳐 즉시 컴퓨터에 이미지를 전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렌즈가 고정되어 있어 교환이 불가능한 점, 흑백 표현만 가능한 부분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 캐논A95. / 니콘 쿨픽스 2500.

>>고화질 디카 가격,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
이후의 디카는 기존 필름 카메라에 별도의 장치를 덧붙이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미국 코닥사가 개발한 디지털 백 제품인 DCS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인데, ‘디지털 백’은 촬상소자(撮像素子, CCD, CMOS)를 얹은 별도의 촬영 장치다. 코닥은 니콘과 캐논의 필름 카메라를 기본으로 디지털 백 제품들을 선보였다.


디지털 백 방식은 가격이 매우 높고 조작이 불편한 단점이 있었지만 촬영된 이미지의 뛰어난 품질로 전문 사진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코닥사는 2003년 DCS 760m까지 꾸준히 디지털 백 제품을 선보였다.


▲ DSLR 카메라 본체.

본격적으로 디카와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는 1999년이다. 그 이전까지는 많은 디카들이 등장했지만 너무 높은 가격에 일부 전문가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장벽을 무너뜨린 첫 제품은 니콘사의 D1이다. 니콘 D1은 270만 화소의 촬상소자를 얹은 본격적인 일안 반사식 카메라라 할 수 있다. 화소는 비록 이전에 등장했던 제품에 비하면 낮았지만, 높은 성능과 다양한 촬영 옵션을 제공했다. 가격 또한 당시 6,000달러 수준으로 타 제품에 비해 낮게 책정되어 전문가와 하이-아마추어 사용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반 디카도 니콘 쿨픽스 2500과 캐논 파워샷 A30 등의 제품을 필두로 2002년 이후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기능을 앞세워 일반 사용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근엔 저렴하고 사용하기 편한 제품들도 많이 등장했다.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인 캐논의 5D 마크 2, 니콘의 D700, 소니 알파900에 이르기까지 높은 화소와 높은 성능을 가졌으면서도 가격은 적절하게 책정되어 일반 사용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디카는 필름 카메라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손쉽게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 편리성 등을 이유로 급속한 속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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