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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2010년 12월 12일 남한산성 종주 탐방 3 (행궁)

by 북한산78s 201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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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남한산성 행궁

      1625년 인조 3년에 완성되었던 남한산성 행궁은,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이 피란하여 직접 47일간 항전했던 곳이며
      19세기 말에는 의병항쟁의 거점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일제는 이곳을 철저하게 훼손하여 1930년대에는
      행궁의 초석만이 겨우 남겨졌던 아픔을 겪은 곳이다
      지난 10년간의 복원공사끝에 지난 10월 24일 마침내 386년전의 행궁 모습이 완공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본 행궁은 완공일 하루만 공개 되었고,
      단청 마무리 공사가 끝나는 내년 하반기에야 일반에 완전 공개 된다고 했다,


 

 

 

 

 

 

 

 

 

엄동 설한 삭풍이 부는 1637년 1월 30일 조선 제16대 왕, 인조는 진흙밭 언땅에 무릎을 꿇고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의 왕이 외국의 왕에게 무릎을 깊숙이 감추고 절을 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보다 더 치욕스런 역사는 없었다!!

 

 

 

 

 

 

 

 

 

 

 

 

 

 

 

 

 

 

 

 

 

 

 

 

 

 

 

 

 

 

 

 

 

 

 

 

 

 

 

 

 

 

남한산성 행궁에서 해설사를하시는이분은 전직이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시고 퇴직을 하셨는데 노후에 산성행궁에서 노후로 문화해설사를 하시는분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경청을 제대로못해서 죄송스럽다. 조선조 인조임금이 처하였던 병자호란당시 상황을 귀에 쏙들어오게 설명을 해주신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당시에 상황이였던것 같다. 백성을 생각하고 힘이되지않아서 남한산성행궁에서 47일동안 나가지도못하고 청나라와 항정을 하다가 항복해서 지금에 서울 송파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릅을 끊고 술을 올리였으니 당시 비참함은 이루말할수가 없었을것이다. 청나라에게 참패후에 아끼는 세자도 청나라로억류되여가고

그많은 양민과 여자들,문화재를 약탈 해갓다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쟁에지면은 불쌍한것은 선한 양민인것이다. 얼마전에 중국 특사가 예정도없이 갑자

기와서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다는것도 그들 조상 들이 한국을 속국으로 아직도 생각 해서 그런것이 아닌가도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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