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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과 명소 탐방.

2010년 2월 18일 서울 창덕궁 탐방.

by 북한산78s 201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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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8일 서울 청덕궁 탐방.

가까운 거리에고궁을 편리한 전철로 이용하면은 찿아볼수있는곳인데 여간해서 선득 가보게되질않는 고궁을

이번 구정에는 찿게 되였다. 창덕궁은 개인  혼자 방문이 안되고 단체로만 방문이 된다고 해서 매표소에서

3000원 단체관람권을 끊고서 있으니 다행이 중국 관광객이 단체로 입장을 하려고 대기 하고 있는것이다.

한국인 가이드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선득 단체로 같이 입장을 하란다. 고맙기도 하다.~~

 

돈화문을 입장을 해서 문화청 해설사가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면서 경내 곳곳을 인솔하면서 데리고 다니는데

이해설사가 용케도 나를 알아보고 개인 입장은 만 오천원을 내고 입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해설사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해설들으냐 카메라 셔터누르랴 바쁘케 따라 다닌다.

 

탐방 시간은 약 한시간 십오분 정도 걸리는데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에 궁궐이 북경에 자금성에 비유하면은 규

묘가 너무적어서 그런가 별로 진지하게 듣는것 같지를 않는다. 우리 해설사는 참으로 유모도 곁들이는듯 열심

히 추운날씨에 해설을 하고 있지많은 나는 중국어를 알아듣지못하지많은 해설사에 몸짓손짓을보면은 알수가

있는것 같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가 지명한 한성 서울에도읍을 정하고 2대 태종 (이방원)이 세운 제2에 왕궁인 창덕궁은

임진왜란때에 모두 불탄후에 광해군 2년에 재건 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역사실록에 광해군은 폭군

으로 지명되여서 반정으로 퇴출되였으니 말이다.

창덕궁은 1997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여서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이 되였다.

북한산 78s.

 

 

 창덕궁에 정문 돈화문,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쓰게된 뒤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



정전 공간의 건축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여 높게 되어있고, 침전건축은 정전보다 낮고 간결하며, 위락공간인 후원에는 자연지형을 위압하지 않도록 작은 정자각을 많이 세웠다.




건물배치에 있어, 정궁인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또한,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으로 또 조경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후원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창건할 때 후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창경궁과도 통하도록 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정자가 소실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정자와 전각들은 인조 원년(1623)이후 역대 제왕들에 의해 개수·증축된 것들이다. 이 곳에는 각종 희귀한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많은 건물과 연못 등이 있다. 역대 제왕과 왕비들은 이곳에서 여가를 즐기고 심신을 수양하거나 학문도 닦았으며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다.

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 시설로서 자연적인 지형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있게 건물을 배치한 왕궁의 후원인 것이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이 고도의 조화를 표출하고 있으며,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조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궁궐지, 창덕궁조영의궤, 동궐도 등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1830년경에 그린 동궐도(국보 제249호)가 창덕궁의 건물배치과 건물형태를 그림으로 전하고 있는데, 궁궐사와 궁궐건축을 연구 고증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창덕궁내 중요 문화재로 돈화문(보물 제383호), 인정문(보물 제813호), 인정전(국보 제225호), 대조전(보물 제816호), 구선원전(보물 제817호), 선정전(보물 제814호), 희정당(보물 제815호),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다래 나무(천연기념물 제251호)등이 지정되었으며,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진선문.

 창덕궁은 전날 내린눈으로 마지막 가는 겨울에정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밤새 내린눈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었는데 문화재청에서 인도는 많이 치워서 불편이 없었다.

 창덕궁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에는 우리같은 서민은 감히 죽을때까지 이궁궐 안을 볼수도 바라볼수도 없었다?

 숙장문..

 이번 창덕궁 방문을 같이한 중국인 관광객 일행.

 인정전 현판. 창덕궁에 제일 중심으로 국가에 중요행사를 치루는 장소이다.

경내 모든누각은 왜 망을 설치하여 놓았을까요. 해설사에 말로는 비둘기등

조류가 배설물을 싸기때문에 설치하여놓았다고 한다.

 인정전.

 인정전뜰 이곳에서 만조백관들이 국가의례를 치루던 곳이다.

 소화전  항아리 중국 북경 자금성을 거도 큰 누각에는 이보다 더큰 주조 항아리가 설치되였서 화재

 에대비한 것 같다.

 인정전 ..

 인정전 창문 전통 문양.

 역대 임금들이 정사를 돌보던 곳이다. 높은 당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신하를에게

 지시와 경쳥을 하였을 것이다. 현군정치를 하였던 자비로운 임금님은 몇이나 되었을까.

 갑자기 인정전 당상을 보면서 생각이 납니다.

 

 우리에 전통 누각은하늘로 올려보면서 지은 건축물은 세계 어디에 내여놓아도뒤지지 않을 듯 합니다.

 

 

 

 

 화재 대비해서 설치하여 놓았다고 합니다.

 

임금님에 접견장. 아마 외국 사신등을 이곳에서 접견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해설사가 중국인 관광객에게 해시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왕비에 새왈공간이라고 하는 대조전...

 

 해시계,,,

 

 

 

 창덕궁 후원....

 대문에 좌물통이 고전에 묘미를 더해주는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대문 수문장이 이열쇠를 관리하였을것 같습니다.

 

 

 

 

 

 이나무도 상당히 오래되였을것 같은데 해설안내판이 없어서 좀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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