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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두대간 이란 무엇 인가

by 북한산78s 2007.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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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삶·터‘백두대간’




-1,400㎞ 큰줄기‘백두대간’…지리산서 백두산까지-



태초에 산이 있었다. ‘아’하면, ‘아’하는, ‘어’하면 ‘어’하는 산. 꼭지점 하나만으로도 하늘을 떠받치던 산이 뿌리를 뻗어 다시 산을 낳았다. 산과 산을 잇는 골짜기마다 품어나온 계곡수는 강을 이뤘고 끝내 바다가 됐다. 조선조 후기 발간된 지리서 ‘산경표’는 우리나라 지형을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15개의 커다란 산줄기, 1대간(백두대간), 2정간(장백정간, 낙남정간), 12정맥으로 보았다. 이 산줄기는 결코 강이나 내로 끊어지는 법이 없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나누지 않는다’.



이것이 최근들어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재발견’돼 일제가 산맥 개념으로 만든 우리 산줄기에 대한 인식의 틀을 뿌리부터 바꿔 놓은‘백두대간(白頭大幹)’의 핵심이다. 백두산에서 뻗어 두류산~금강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덕유산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1,400㎞의 큰 산줄기. 이 산들의 영향으로 강들이 생겨나고 강 부근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을이 자리잡게 됐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에게 땅의 중심이며, 산에 기대어 강을 품고 살아온 우리네 삶의 고향이자 역사와 문화의 무대이고, 우리 땅 여행의 근간이기도 하다.


혹시 가슴에 백두대간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신열을 앓듯 2,000리 산길을 따라가며 얼을 새기는 사람들. 백두대간은 산사람들에게 영원한 숙제다. 백두대간동지회의 조용원 회장은 동생 봉원씨와 함께 10년동안 매주 산을 찾아 대간산행은 물론 3,800㎞에 달하는 정간과 정맥 산행을 끝냈다. 수원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김준영군은 요즘 아버지 태정씨와 함께 대간을 걷고 있다. 구두닦이 장용호씨는 97년 당시 15세이던 아들과 함께 1년2개월 만에 대간종주를 했다. 최봉조씨는 지난 98년 여름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백두대간을 함께 종주한 연인과 산중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최씨와 함께 대간을 종주한 38명중 4쌍이나 결혼했다.


백두대간 순례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만 거인산악회 등 7개 산악팀이 대간 종주를 하고 있다. 이미 종주를 마친 산악인도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북녘을 제외하고 우리가 밟을 수 있는 진부령~지리산 구간은 도상거리 640㎞, 실측거리 824㎞. 매주 산행을 해도 꼬박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버거운 산길이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백두대간에 몰려드는 것일까.


“대간을 타면서 우리땅을 제대로 알게 됐어요. 산이 어떻게 풀려나오고 강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사실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지만 마력처럼 산에 빠지게 된 거죠.”



3년전 대간 종주를 끝내고 현재 정맥과 정간 종주를 하고 있는 여성산악인 조유선씨(45)는 대간의 마루금(능선)에 서면 어디서든지 국토에 대한 애정이 살아난다고 말한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을 그대로 실감할 수 있다는 것. 백두대간 종주는 단 한 번도 강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우리 국토의 척추. ‘산경표를 위하여’를 쓴 산악인 조석필씨는 백두대간을 지리 교과서나 다름없다고 주장해왔다. 지형은 단순히 땅의 모양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리학을 배경으로 한 민속학·언어학 등 인문학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산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동편제·서편제의 각기 다른 특징들도 대간과 정맥의 지형으로는 설명할 수 있다. 말씨도 산줄기에 따라 나뉘고, 살림집의 모양새도 큰 산 하나로 갈린다.


백두대간 종주는 10여년 전부터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직장인, 청소년, 주부 등도 종주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많은 문화계 인사들도 대간을 찾고 있다. 90년대 후반 대간종주를 한 이성부 시인은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라는 부제를 단 연작시집 ‘지리산’을 썼고, 이향지 시인은 북한의 백두대간에 대한 책을 펴냈다.


“처음에는 백두대간 산행이 묻혀버린 우리 산하의 개념을 되살리자는 뜻에서 시작됐습니다. 백두대간의 중요성을 교과서에 넣어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펼쳐오고 있습니다”


등산 전문지 ‘사람과 산’ 편집장 김우선씨는 ‘백두대간 운동’은 우리 땅의 인문·지리개념을 바꾼 ‘대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한줄기의 곧은 대간(大幹)이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태백산에서 중봉을 이루고 지리산에서 끝나니, 당초 백두정간(正幹)이란 이름을 지은 것이 뜻이 있어서일 듯하다. 그리고 인재가 나온 곳간이 되었으니, 필경 국가가 기댈 바가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알겠다.’(성호 이익)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백두대간. 대간의 재발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하나의 능선으로 이루어진 국토의 참모습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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